김하나 <Untitled> 130.3x162.2cm 캔버스에 유채 2016 / <Untitled> 90.9x72.7cm 캔버스에 유채 2014
감정의 재현을 통해 구축한 심리적 풍경
: 김하나 작가의 작품에 관한 짧은 글
김하나의 추상적 회화는 오묘한 매력을 갖는다. 아무 설명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김하나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오로라’가 떠올랐다. 오로라는 북극 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기상 현상이다. 오로라를 보면 붉고, 노랗고, 퍼렇고, 거뭇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색깔이 마치 마법처럼 어우러져 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작가가 직접 체험해보지는 않았던 ‘빙하 풍경’에 관한 작품들이다. 파편적으로 수집한 빙하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신비함, 불규칙적 변화, 혹은 그것을 바라보는 감정을 다루었다. 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 물질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물은 온도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데, 고체 상태일 때에는 얼음이 되어 부피가 커지고, 물을 끓이면 기체인 수증기가 된다. 고체이자 액체면서 또한 기체가 될 수 있는 대상을 참조하였다는 말은, 어쩌면 그 대상 자체에 관한 관심만큼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음’이라는 특성에 매료된 것 같다.
김하나의 작품은 대부분의 경우 제목이 없다. <무제 Untitled>가 곧 제목이다. 작가는 제목을 통해 감정적 요소를 촉발시키거나, 명확하게 주제 의식을 드러나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작품 각각을 분석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한 점 한 점의 개별적 의미나 의의보다도, 그것이 하나의 시리즈로 묶여 조화를 이루면서 여러 가지 목소리가 합쳐질 때 더욱 단단해진다.
작가는 내가 아닌 타인이 경험한 여행 사진이나 영상을 기반으로 회화 표면을 구성해 나간다. 그러한 이미지들 속에서 작가가 취사선택한 본질적인 요소는 김하나의 눈과 손을 거쳐 재해석되어 화면 위에 옮겨진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추상과 구상의 중간 어디 즈음”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가 구체적인 장면이나 분위기를 상상하고 작품에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 있는 ‘풍경’은 여느 풍경화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지도 않고, 색 역시도 실제와는 다르게 사용되어 직접적으로 어떤 대상을 유추해내기에는 연결고리가 매우 느슨하기 때문이다. 회화 표면 내에서 원근감은 모두 삭제되어 지극히 평평하게 보이고, 대상은 아주 가깝게 클로즈업되어 형태나 양감보다는 물질성, 혹은 질감이 느껴진다.
김하나의 작업에서 한 가지 특징적인 요소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 화면을 메우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는 나무 지지대를 대지 않은 날 것의 캔버스 천 위에 물감을 얹고, 천 자체를 움직여서 물감을 흐르게 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그 위에 붓과 같은 도구를 활용해 직접적으로 선이나 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일부 작업에서는 재료를 붓을 이용해 직접 다루지 않고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흔적을 받아드리기도 하는 셈이다. 흐른 물감은 캔버스 표면 위에서 뿐만 아니라 옆면으로도 타고 흐르며 시간의 축적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이러한 표현 질료의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시도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촉각적 기능을 회화 표면에 적용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흑연 가루나 오일, 유화 물감이 가진 재료 본연의 특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서도 촉각적 감각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제 작업의 특성은 다른 작업들을 이어 붙였을 때 (상하, 좌우가 바뀌어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는 점이에요.” 작가의 이 같은 발언은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형태적인 측면, 재료의 물질성 이외에도 그의 작품들을 서로 ‘어울리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그가 사용하는 색에 있다. 흰색을 가득 머금은 톤 다운된 색채는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며 그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다. 김하나는 세네가지의 색을 섞어 채도가 낮은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내는데, 그 때문에 조명의 색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한다. 김하나 작업에서 사용되는 이러한 색채는 화사하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창백한, 혹은 핼쓱한(pale) 느낌을 준다.
김하나의 작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각각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은 미묘한 색감과 재료의 촉각적 감각으로 구성되어 있어 발화의 방식이 은유적이며, 작품이 놓이는 상황, 또한 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풍경에서 시작해 점차 색과 선으로 단순화되어 표현된 그의 작품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가 구획한 각기 다른 크기의 ‘창문’들은 어떤 풍경의 단편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종합적으로 인식하여 관객 각자가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참조한 현실의 풍경 그 너머에 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장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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