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5.
<제3의 과제전> 내부 워크숍 후기_최정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맞닥뜨린 현실은 말 그대로 ‘멘붕’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미술사’와 현장의 온도 차이는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으로, 인턴, 코디네이터, 통역 아르바이트 등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분위기를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동시대미술 현장을 각기 다른 포지션에서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게도 희미하기는 했지만 어떤 ‘기준점’이 생겨나는 듯했다. 미술대학에서 작업을 하고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가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전시 공간, 전시를 만드는 사람,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은 실제로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루비아다방은 <제3의 과제전>을 통해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고, 97명의 지원자 중 5명을 선별해 자유로운 창작/조형 언어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제3의 과제전>은 참여하는 다섯 명의 작가들에게 국내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온 사루비아다방에서 그룹전의 형태로 학교 바깥의 관객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루비아다방에서는 “얼마나 주체적인 태도로 작업을 대하는지, 독창적 자기 세계를 지향하며 기성작가의 작품 유형과 얼마나 변별력을 갖는지, 형식으로부터 유연한 사고력을 지녔는지”의 기준으로 다섯 명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때문에, 하나의 관점이나 주제 의식으로 전시를 보는 것은 불가하며, 각 작가의 작품에 관해 개별적인 코멘트를 하는 방식으로 내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김은주는 색채를 활용한 평면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원색으로 이루어진 추상적 풍경인데, 일상적인 풍경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상을 간략화하고, 형과 색으로만 그때의 감각을 재구성한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에 일부 활용된 레몬 빛 노란색으로 벽을 칠하고 그 위에 작품을 걸었는데, 이러한 작품 외의 설치 방식에 있어서의 개입을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면 좋을듯하다. 조미형은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을 이용해 바닷물의 움직임을 담고 있다. 작품은 수평으로 나무 구조물 위에 놓여 형광등 아래 놓인 형태로 설치됐는데,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표면의 질감과 그 일렁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야 셀민스(Vija Celmins)의 작업에서처럼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 위에서 사실주의적 방식으로 표면의 물성을 시각화한다. 이문영은 석고, 유토, 망사, 종이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실체 없는 가상의 공간/풍경을 만든다. 별도의 좌대 없이 바닥에 작품을 내려놓아 관객은 한 눈에 그가 만든 풍경을 내려다보고 조망할 수 있었다. 주제 면에서나 표현방식에 있어서 좀 더 단단해질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송수민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가득 머금은 <막>은 논산 일대의 풍경을 재구현한 형태로, 탱크, 무기고 등을 흰색 기하학적 형태로 숨겨놓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심원법을 활용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고 갈아내고 그 위에 덧칠하는 방식으로 바랜 듯 보이는 질감표현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잘 어우러진다. 박예나는 주변의 사물을 이용하여 기능을 살짝 바꾸거나, 새로운 형태의 오브제를 만든다. 개념의 전환을 꾀하는 아이디어를 드로잉으로 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 형태로 구현해내는 것에는 갭이 존재한다. 형태로서의 완성도 혹은 명확한 주제 의식, 이 둘이 모두 작품에서 결여된 듯 보인다. 이전 작업 중에서는 <대화 소파>가 형태와 개념이 균형감각을 이루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현장에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작품에 작업관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실제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작업에 관해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꼭 그 말을 듣거나 누군가의 평가에 좌지우지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보지 못한 관점에서 나와 나의 작업에 관해 좀 더 고민해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각이며, 백각이 불여일행이라고 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깨우침이 나으며, 백번 깨우침보다 한번 행함이 낫다는 말이다. 이관훈, 문소영 큐레이터와 긴밀하게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들은 직접 행함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섯 명의 작가의 작품에 관해 들을 수 있어서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다른 전시 공간에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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