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7’ 후기
예술기획, 큐레이팅, 미술전시, 담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단어들조차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미술을 일상에서 향유하고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관객의 수가 적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인구 전체 5천만 중에서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자리도, 미술 관객도, 주요 전시장도, 예산도 서울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인구분포도를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 혹은 예산이 적다하더라도 의미 있는 기획, 실천은 어디에서라도 이뤄질 수 있다. 그것은 오롯이 각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획자들의 역량에 달린 일이다. 좋은 기획, 전시를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서울이 아닌 문화적 토양이 척박한 지역에서의 기획/실천의 방향성은 서울에서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7’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술에 관한 고민을 이어온 5명(팀)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발제자 다섯 팀 중 셋은 공간적 거점을 갖고 있었다. 김연주, 김범진은 제주도에 ‘문화공간 양’을, 박혜강, 이명훈은 전남 순천에 ‘예술공간 돈키호테’, 백은정, 최윤성은 강원도 속초에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물리적 공간을 가지고 그곳에서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김화용 역시 ‘문화 생산자를 위한 공간: 가옥’을 3년 여 간 운영한 바 있다.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거주하며 생활하는 이들은 대부분 지역에 연고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물리적 공간이 없이 기획/실천을 이어가는 일은 서울에서보다 더욱 어려워보였다.
많은 경우, 문화예술기획 혹은 공간 운영이 문화재단이나 지자체, 국공립 기금에서 예산을 확보해야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연계된 프로젝트를 필연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문화공간 양’은 지역사회와 주민들과 서서히 관계를 맺는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과정을 생략하거나 시간을 압축하지 않았으며,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나의 객관적인 관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개별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거로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명훈은 순천의 아트맵을 제작하고, 전남 미술사를 정리하는 ‘전남미술사 총서’를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자유즉흥 노이즈음악에 관한 전시/연구를 지속하면서 지역연구에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프로젝트와, 지역과 무관한 자신들의 예술적 취향 혹은 관심사와 관련한 일들을 함께 이어왔다.
공간적 거점 없이 독립적으로 예술 실천을 이어온 발제자는 최윤정과 김화용이 있었다. 최윤정은 성매매 집결지였던 자갈마당의 기억변신 프로젝트(2016)를 기획하였다. 사회적 의제에 관해 시민 인권단체, 예술가가 함께 협력하여 여성 인권에 관해 발언하는 대안공간을 설립하는 일이었다. 타자이자 외부자인 기획자, 작가가 특정한 목적 혹은 주제의식을 공유하며 지역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하고 개입하여 창작의 결과물을 발표하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을 것 같다. 예술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역할을 가진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미적인 순수성이나, 미술사적 의의를 추구하는 범주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 인식의 변환이 필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행동하려면 큰 용기와 확신이 필요할 것 같았다.
김화용도 마찬가지였다. ‘미술’의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적극적으로 넘어서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다양한 놀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술의 영역 바깥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또 그들로부터 배우는 일들을 이어갔다. ‘2017 창의 예술캠프’의 예술 감독을 맡기도 한 그는 기존의 교과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백은정, 최윤성은 칠성조선소를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설립했다. 직접 나무를 깎아 카누와 카약 등의 배를 만드는 곳을 만든 것이다. 이 둘은 손으로 직접 깎고 다듬어 배를 만드는 일을 한다.
2016년 로컬 큐레이팅 포럼이 인천 지역의 여러 공간과 인천 미술사 연구 등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2017년에는 여러 의미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쉽게는 인천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갔으며, 또 다른 의미에서는 미술/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범주 바깥으로 확장해 나갔다. 미술의 맥락 안으로 사회적 의제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현장으로 예술가들이 뛰어나갔으며, 미술의 맥락 안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았다. 더 나아가 보트를 직접 잘 디자인하고 만들고, 그것을 보여주는 전시장/레지던시를 만드는 일 역시도 지역에서의 가능한 문화예술 실천이라 보았다.
발제를 모두 마치고 누군가가 ‘장인, 혹은 기술자로 불리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언급하며, ‘삶이 곧 예술이 되는 일’을 소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독립 기획자, 혹은 공간을 운영하는 기획자의 경우, 일상의 삶과 하는 일/예술이 분리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서 매진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일들을 벌이고 있음에도 고민하는 지점이 많은 부분 겹쳤고, 또 이미 오랜 세월을 보내 온 선배의 경험담에서 삶의 지혜를 들을 수 있었다. 개미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살아가되, 느슨하게나마 거미줄을 치고 서로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프로젝트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서로 읽어주고 피드백하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왜 기획을 하고 있는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관객은 누구일까? 예술은 어떤 역할을 가져야 하는가? 여러 가지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아마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시간이 더 쌓여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왜 기획을 하는가?
- 예술이 어떤 역할을 가져야 하는가?
- 관객은 누구인가? 관객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 지역에서의 큐레이팅이 서울에서의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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