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 <조율하는 마음대로> 혼합재료 2017
로우-테크놀로지의 ‘놀이’를 위한 오브제
: 장준호 개인전 <조율하는 마음대로>(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7.11.24~12.14) 리뷰
최정윤 (윌링앤딜링 협력큐레이터)
뒤샹의 <샘> 이후, ‘개념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우리에게 ‘업보’처럼 남은 여러 유산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기본적인 제작의 테크닉과 관련된 기능적 요소를 간과하게 된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우리가 미술의 테두리 안에서 보는 많은 작품들은 작가는 개념을 구축, 제시할 뿐 실제 그것을 제작하는 일은 특정 업체에 맡겨도, 스튜디오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도 상관없어졌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인가, 웹툰 만화가 몇 명이 나와 제작과정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누군가는 자신만의 그림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구현하면서 맞이하게 될 어려움을 고려하다보면 자유롭게 스토리 라인을 전개하는 데 제약이 되어 실제 작화는 외주를 맡긴다고 말했다. 이런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손맛’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굳이 분류한다면 장준호의 경우는 ‘개념’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며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작가, 어쩌면 ‘만들기’에서 오는 직접적인 감각의 매력에 강력하게 매료돼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장준호가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나무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조각의 재료로 오랜 기간 활용해 온 재료다. 무게감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것은 물론, 보관 역시 쉽지 않다. 팽창이나 수축, 뒤틀림 현상 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불편함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해당 재료를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작가 개인이 가지는 나무를 다루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틀어지는 마음대로>에서는 느티나무를, <조율하는 마음대로>에서는 각기 단풍나무, 흑단, 로즈우드 등을 썼다. MDF(목섬유를 접착제와 함께 압착한 재료-가격도 저렴하고, 제작도 용이함)를 싫어한다는 작가는 원목이나 합판 등을 주로 사용한다. 자연스러운 재료, 날 것 그대로의 어떤 것, 그리고 그것을 손으로 만지고, 끌이나 톱으로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것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재료로 그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치 체스 판처럼 보이는 흰 판위에 체스 말처럼 보이는 조그만 오브제들을 꽂아둔 <조율하는 마음대로>, 흰 좌대 위에 나무로 깎은 행복이라는 단어가 읽기 어렵도록 뒤엉켜 있는 <행복알 행복>, 성에서 문지기가 성문을 열 때 돌리는 장치처럼 보이는 <틀어지는 마음대로>, 거대한 스피커 같기도, 꽃잎 같기도 한 <조형물>, 손가락 모양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저기 조기 자기 주기>까지. 모두 얼핏 보았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특정한 기능을 가진 오브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기능’이라는 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종류의 ‘기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와 전시장에 도달하면 영상 작업을 보게 되는데, 영상에서 몇몇 참여자는 장준호가 전시장 곳곳에 비치해 둔 각기 다른 오브제를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마치 어떤 게임을 벌이듯, 관객은 <조율하는 마음대로> 위에 꽂혀 있는 나무 오브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작은 오브제는 흰색으로 칠해진 나무판에 뚫려있는 구멍에 잘 꽂아질 수 있도록 날렵하게 다듬어져 있다. 밝은 나무색, 적갈색, 검은색 세 가지 다른 색으로 만들어진 오브제는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는데, 원, 반원, 계단형, 리본 모양, 사다리꼴 형태로 머리 부분이 만들어져있고, 아랫부분은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얇은 기둥으로 구성된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유하고 인지할 수 있는 ‘규칙’이 있어야 하겠지만, 전시장에서는 어떠한 규칙도, 게임의 시작도 끝도 없다. 관객이 이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주어진 환경을 ‘조율’한다는 의미만큼이나 촉각적 체험 그 자체다. <행복알 행복>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쪽 끝을 붙잡고 핀볼 게임처럼 글자 형태로 나 있는 문구 위로 여러 크기의 구슬을 움직여 내려 보낼 수 있는 구조물이지만, 명확한 목표 의식을 자극하는 형태의 구조물은 아니다. 더 나아가 <조율하는 마음대로>의 조그만 오브제 중에는 노끈이 감겨 있는 경우도 있고, <행복알 행복>에서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마치 한자처럼 흘려서 쓰여 있어, 마을의 맥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장승 위에 문구가 적혀있는 형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두 오브제는 일종의 ‘토템’처럼 특정 집단의 상징이나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준호 <저기 조기 자기 주기> / <조형물> / <틀어지는 마음대로> / <행복알 행복> 2017
전시장을 올라오는 계단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 <저기 조기 자기 주기>는 ‘로우-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2017년 9월, 성북동에 위치한 정법사 앞에 영구 설치했던 이전 작업과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절에 가서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비는 마음처럼, 관객은 절 앞에 설치되어 있는 구조물 아래 달린 손잡이를 돌릴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만든 구조물은 아래에서 20바퀴를 힘차게 돌리면 위의 오브제는 겨우 한 바퀴가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 효율을 꿈꾸는 오늘날과 같은 발전된 기술의 시대에 ‘효율성’이라는 커다란 명제에 의도적으로 역행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자기 조기 자기 주기>에서는 계단 옆에서 나무로 된 손잡이를 한 바퀴 돌리면, 위의 구조물도 한 바퀴 돌아간다. 이것을 돌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돌리는 사람은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조물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전시장 위에 서 있어야 하고, 아래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사람은 구조물을 한쪽 방향에서만 파편적으로 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작가는 일하는 사람 따로, 즐기는 사람은 따로 있는 모순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경험하게끔 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 <조율하는 마음대로>를 구상하면서 작가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작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한 <조형물>에는 장준호 작가의 여러 고민이 복합적으로 반영돼 있다. 관객은 전시장 안에서 <조형물> 작업이 크기 면에서, 또한 재료 면에서 다른 출품작과 약간은 동떨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이 앞인지, 구조물 이음새 부분이 드러나는 면이 앞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조형물’이라는 제목, 명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인지하기 어려운 형태 등 이 작업은 지극히 추상적으로 뭉뚱그려진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그가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염두에 두었다는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조형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예술 사이의 관계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을 작품을 통해 직설적으로 관객에게 말하지 않는 대신, 작은 단서들만을 던져줌으로써 각자 생각해보게끔 한다.
장준호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위계를 모두 제거하고, 작가가 조각을 만들 때 느끼는-재료와의 직접적인 마찰을 통해서 체득하게 되는-촉각적 감각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예술을 통해서 특정한 사건이나 이슈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그가 사용하는 재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들을 놀이처럼 풀어낸다. 재료, 그것을 다듬는 행위, 보는 관객은 전시장 안에서 한 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Art > 3.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기] <제3의 과제전> 내부 워크숍(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2017.12.5) (0) | 2018.01.24 |
---|---|
[후기] 블라인드데이트_로렌조 에그레쟈(Lourenco Egreja: 포르투칼 Carpe Diem 디렉터) (0) | 2017.11.19 |
[후기] 위켄드에서 보낸 1년을 회고하며 (0) | 2017.1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