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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 메모

‘규율 권력’과 ‘외모 코르셋’

by ㅊㅈㅇ 2018. 6. 16.

규율 권력외모 코르셋

  

미셸 푸코는 그의 책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권력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규율권력은 왕이 국가를 통치하던 시절 존재하였던 군주권력과 달리,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품행을 총체적으로 포획하는 권력으로 일종의 미시적 권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규율권력은 연속적 관리체계 내에 있어 시작 시기와 종료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진다. 푸코가 말하는 규율권력에서 핵심적인 것은 권력의 행사가 억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사회의 여러 제도 속에 권력체계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사람들은 교육을 받고 성장하며 사회생활을 이어가면서 자기 스스로 내면화하게 된 규율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감시자의 시선을 받아들여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시하는 주체가 된다. 학습된 감시의 시선은 마음 내부에 자리 잡게 되어 양심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감시사회에서 생겨난 윤리를 내면화함으로써 자기의 중요한 핵을 구성한다. 다시 말해, 이제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주체가 되고, 우리 모두는 일반화된 판옵티콘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교육은 유순한 신체를 생산하는 장치의 일종이다. 감시를 위한 내재화된 장치인 규율권력은 자동적이고 익명적인 무형의 거대한 기계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근대의 교육은 커다란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해 하나의 제품을 만들듯한 생산 공정을 거쳐 예속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계몽의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일관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정규영은 그의 논문에서 푸코가 계몽사상 일체를 허구적인 것으로 전면 부정했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가 근대 교육을 해석한 방식은 투쟁과 저항을 위한 전술적 행위라는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푸코가 근대적 교육의 장점을 객관적으로 기술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모두 적는 경우 글 자체가 매우 진부하게 흘러가고 파괴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푸코는 근대에 관한 포괄적이고 일반적 해석을 시도하지 않는 대신,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른 질서로의 변화를 꿈꾸며 글쓰기 자체를 일종의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성소수자라는 그의 정체성이 기성 체제나 사회의 전복을 꿈꾸며 급진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성의 체제,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합리적이라고 믿는 제도나 관습에 관해서 의문을 제기해보는 시선은 2018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화평론가 서동진은 그의 글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해부학에서 19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자기계발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주목한다. 자기계발 담론은 자아의 기업가화라는 자기 지배의 권력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성의 형태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조직인간에서 벗어나겠다는 노동자의 자유를 향한 욕망은, 자기주도성을 가진 지식근로자를 착취하려는 자본가의 욕망과 마주한다고 지적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자기 주도적으로 끊임없이 학습하여, 자기계발에 몰두하려는 현대인들의 욕망은 어쩌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의도와 결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기능이 뛰어난 부품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회의 요구에 잘 부합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2018년 현재의 상황에 적용해볼 수 있는 사례로 여성과 관련한 몇 가지 이슈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이 자연스럽게 학습하어 내재화한 여성스러운외모나 자세, 몸가짐 등 말이다.

지하철을 타면 가득한 사람들로 원치 않는 신체의 충돌이나 체취 등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정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쩍벌남’ ‘화장녀’ ‘백팩족등이 있다. ‘쩍벌남은 다리를 90도 각도 이상으로 넓게 벌리고 앉아 옆 사람의 자리를 침범하여 불편을 유발하는 경우이고, ‘화장녀는 지하철 내에서 화장을 하는 여자, ‘백팩족은 백팩에 얼굴이나 몸을 부딪혀도 가방 주인은 친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지하철에서 민폐를 끼치는 남성을 말할 때 주로 언급되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쩍벌’) 행위를 살펴보겠다. 많은 남성들은 다리를 당당하게 벌리고 앉거나 공간을 향해 열린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반면, 여성의 이미지는 대부분은 그 반대다. 닫힌 자세, 오므린 다리, 가녀린 태를 일컬어 여성스럽고, 보호해주고 싶은, 조신한 어떤 것으로 흔히 말한다. 여자 아이돌 가수인 EXID의 하니의 쩍벌자세가 화제가 된 것은 이러한 학습된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팀의 다른 멤버가 수시로 자세를 지적해 교정해주는 모습도 전파를 탔다. 동성 친구, 어머니와 같은 주변 여성들이 서로 지적, 교정해주면서, 내재된 규율을 더욱 공고히 한다.

비슷한 맥락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제작된 바 있다. 2001년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송상희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기계들>(2001.10.26.~11.6)이다. 제목 그대로 작가는 직접 고안한 각종 기계를 설치하고, 기계 작동 매뉴얼을 함께 전시하였다. 전시된 기계들 중에는 성공을 위한 몸 보정기부터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 보정기도 있었다. 이러한 보정기구는 일종의 고문기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실제 착용을 하게 되면 강제성을 띠면서 신체를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기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억압 기제를 내재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성공을 위한 몸 보정기는 올바른 인사 동작, 명함을 건넬 때 자신을 과시하는 법, 올바른 미소법 등을 강제하는 기계이며,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 보정기는 양 다리를 한쪽으로 모아 바른 자세로 앉는 동작을 보정해주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 기계를 실제 착용하는 사람은 물질적 성공이 유일한 목표가 된 사회, 혹은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받아들이고 따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대인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강박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누리꾼들은 이를 일컬어 외모 코르셋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코르셋은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하고 가슴을 지지하기 위해 귀족 여성들이 주로 입었던 동물의 뼈나 강철, , 상아 등을 이용한 몸매 보정 속옷이었다. 미적으로는 아름답지만, 무리하게 압박을 주는 경우 뼈를 부러뜨리거나 내출혈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 누리꾼들이 말하는 외모 코르셋은 사회가 강요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것은 비단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멋진 몸매와 외모를 가진 사람을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칭송한다. 외모도 일종의 스펙이라 운운하며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격적 결함, 게으름, 건강한 생활습관의 부재를 들이대며 실패자취급하기 일쑤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의복의 종류 중 하이힐과 오프 숄더, 미니스커트 등이 있다.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으면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으며, 걷거나 뛰는 것도 불편하다. 어깨를 전부 드러내는 오프 숄더 블라우스 역시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데 큰 제약을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손을 높이 올리거나 팔을 크게 흔들 수도 없는 이러한 옷의 종류는 단지 보기에만 좋을 뿐 자유로운 행동이나 자세를 제한하는 인형에게나 입힐 법한 옷에 다름 아니다. 이에 몇몇 페미니즘 운동을 지향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역지사지의 방법론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인 미러링’(거울 비추기)으로 각종 패러디를 선보이고 있다. 남성에게 여성의 옷을, 여성에게 남성의 옷을 입혀서 찍은 사진들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속박하고 행동거지를 제한하는 의복이 얼마나 억압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규율권력은 그 누구도 강제하거나 법처럼 원칙으로 정해져 있어 따르지 않으면 벌을 받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원천적으로는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 이러한 규율을 내면화하여 따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매스컴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복된 언행을 통해 이러한 규율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어쩌면 변화의 시작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온 위의 규율들에 ?”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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