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너에게로: 임지민 작가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어떤 기억이든 점차 잊히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몇몇 소중한 기억에 관해서는, 자연스러운 망각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기억을 기록하거나 소중한 사람들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거슬러 망각하지 않고 추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잊고 싶지 않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축복이다. 뇌에 있는 한정된 기억 창고에서 절대 꺼내어 버리고 싶지 않는,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에 관하여
2010~2016년에 제작된 임지민의 초기 작품은 명백히 자신의 ‘기억(memory)’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가족이 찍힌 오래된 사진에서 몇몇 장면들을 선별해 캔버스에 옮겼다. 부모님의 결혼식, 발을 다쳤던 날,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있는 아이, 졸업식, 생일파티…. 평범한 날들 가운데 있었던 특별한 순간에 찍힌 사진은 작가로 하여금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흘러가버린 시간의 흔적을 되쫓게 한다. 누군가에게 다 있었을 법한, 평범한 가족의 일상, 그리고 사적으로 의미 있는 순간은 관객에게 부모님 댁 한편에 꽂혀있는 낡은 앨범을 뒤적이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는 모두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게 된다. 각자가 나고 자란 환경,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사적인 영역의 어떤 것으로 당연하고 특별할 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평범하지만 또 오직 하나뿐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작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깊이 몸으로 느꼈다. 2010년,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경험한 죽음과 상실에 대한 기억은 그로 하여금 아무 것도 몰랐지만 행복했던 과거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주택에서 살면서, 마당에서 강아지와 나무를 키우고, 동네 친구들과 실뜨기, 구슬치기, 색종이 접기 놀이를 하며 보내는 비교적 자연과 가까운 경험으로 가득했다. 죽음과 부재의 경험은 역으로 삶과 추억에 몰두하도록 했다. 모든 기억이 그러하듯이, 기억은 불완전하고 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다른 형태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임지민이 화면에 옮긴 장면은 구체적이고 명징한 사건이나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 대신, 손, 옷깃, 토르소, 꽃 등 의도적으로 전체의 일부분만을 담는다. 기억의 ‘중심’이 되는 부분보다는 ‘주변’의 상황들을 기록하는 셈이다.
기억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양원에 있는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카드 게임, 색칠 공부, 실뜨기 등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를 다시 한다. 어렸을 때 무심코 했던 놀이는 죽음을 목전에 앞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들의 치료법이 된다. 오랜 시간 쌓인 기억들은 백지장과 같이 하얗게 사라지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회귀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로 연결되고, 인생은 그렇게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며 이어져나간다. 작가에게 있어 손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고 자르고 붙이는 행위는 흩어져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나를 떠난 기억들
초기 작품이 기억과 개인적 상징을 비교적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2017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개인의 기억에서 조금씩 분리되어가는, 익명적이고 또 초현실적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아이들은 개인적 서사를 모두 감추고 거리를 유지하는 익명의 존재다. 이는 나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더 이상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과일, 뜨개질, 색종이 등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도 확인할 수 있다. 분명 그의 작품은 개인적 경험과 동기에서 시작됐지만, 최근의 작품에서는 그려지는 대상의 종류가 한정되면서 어쩔 수없이 생기는 한계나 틀을 부수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
최근 드로잉에서는 짙은 녹색, 회색 등 시간대나 상황을 유추할 수 없는 추상적 배경 위에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손을 투박하게 그렸다. 그가 그린 손들은 특정 오브제를 쥐고 있거나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손 드로잉에서처럼 섬세한 감정이나 표정이 읽힌 다기 보다는, 일종의 이미지 수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그려진 과일이나 손을 보고 있노라면 개개별 대상에서 특정한 상징을 발견하게 되기보다는,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임지민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요소는 그의 이전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자기참조적(self-referential)인 태도를 보여준다. 기존의 맥락에서는 분리되어 회화 안에서 자리한다.
<memory collage>(2018~9)라고 이름 붙인 최근의 회화 작품에서는 여러 개의 화면이 한 화면 내에 중첩, 반복되면서 각기 다른 상황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데, 이 역시도 구구절절 자세하게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 대신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단서만을 간략하게 던져주고 있다.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과 에스키스처럼 러프하게 그려낸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한 화면 내에 공존하는데, 이러한 요소가 이 작품이 사진이나 다른 매체가 아닌 ‘그림’임을 더욱 생생하게 강조하고 있다. 마치 인터넷에서 하나를 검색하면 연결해서 뜨는 연관검색어나, 유투브에서 하나의 영상을 보고나면 뒤 따라 보게 되는 자동재생 목록과 같이, 느슨한 연결고리(link)를 가진 이미지들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꼬리를 물며 이어져나가는 화면을 보여준다.
스스로의 기억, ‘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는 한계점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는 다른 방식으로도 계속된다. 기존에는 실제 기록사진에서 작품이 시작되었다면, 이제는 이미지가 아닌, 언어, 음악 등에서 시작하여 상상하는 방식으로 그리기 실험을 이어간다. 2017년 전시공간 의식주에서 개최했던 2인전 <같거나 다른>에서는 김선우 작가와 협업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공동 제작했다. 또한 최근에는 작곡가 최정윤과 함께 ‘방’에 관한 기억과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협업을 진행 중이다. ‘나’로부터 비롯된 기억의 파편들, 그가 만든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를 부수는 과정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누구보다도 예민한 감각, 오감을 활용해 예전의 기억을 꽉 붙잡으려는 노력…. 임지민은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경험의 기억을 기록하고, 붙잡으려고 애쓰고, 더 나아가 이제는 그것을 관객에게 보낸다. 나로부터 너에게로….
* 2019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 참여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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