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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1. 작가론

[작가론] 경계에 위치한 모험의 여정 : 정진(Jung Jin)

by ㅊㅈㅇ 2019. 10. 30.

정진 <소쩍새가 우는 오후> Acrylic on paper 115x90cm 2019

치열한 경쟁을 견뎌내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을 본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생계를 마련하고 끝없는 노동의 굴레에 스스로 뛰어든다. 누군가가 생을 고난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결단은 더 이상 살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계속 생의 의지를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욕망, 얻고 싶은 힘이 삶의 쳇바퀴를 계속 돌리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더 나아가 운명, 우연적 힘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녹록치 않는 현실의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작가의 삶을 살게 하는 욕망의 근원은 어디일까? 정진은 생의 원동력이 되는 이러한 욕망, 그리고 그것 사이의 충돌과 투쟁 관계에 관해 다루고 있다.

정진의 작품에는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2014년에는 <정글북>의 늑대소년 모글리가 문명세계로 들어와 겪게 되는 삶을 상상하여 그린 시리즈를 선보였는가 하면, 2015년에는 일상적인 도시 풍경 위에 만화 캐릭터인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을 넣어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된 양상을 펼쳐보였다. 올해 제작한 신작 <악몽의 밤> <소쩍새가 우는 오후> <소쩍새가 우는 밤> <동아줄이 내려오는 밤>에서도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욕망과 갈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관객은 작품의 제목에서 얻을 수 있는 약간의 단서와 익숙한 만화 캐릭터에서 유추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떠올리게 된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아 죽은 며느리가 소쩍새로 환생한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같은 한국의 전통 설화부터, 신을 속인 대가로 무한히 돌을 산 위로 올리는 노역을 해야 하는 시시포스(Sisyphus)를 다룬 그리스 신화, 정글북, 인어공주, 알리딘의 지니와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한 여러 종류의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을 정진의 작품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단순하고 우화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며 삶의 지혜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것이, 작가는 그것을 전혀 직접적인 방식, 혹은 서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상 분석이나 구성요소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정진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표현한 방식 그 자체다. 평면의 한계를 시각적으로 뛰어넘어보고자 했던 실험 정신은 실크샤를 이용한 일련의 작업들에서 살필 수 있다. <폭죽을 터뜨리고 싶을 때> <순조로운 날>과 같은 작품에서 정진은 여러 겹으로 쌓인 레이어를 물리적으로 실제 확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비닐을 수집한 뒤, 비닐 위의 패턴이나 색을 활용해 일종의 콜라주를 제작했다. 이후에 실크샤를 이용해 여러 겹으로 씌우고, 또 그 위에 드로잉을 진행했다. 평면이라는 제약을 뛰어넘은 물리적 레이어를 더하는 형식 실험에 관한 관심이 직접적으로 발현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측면에 서서 작품을 바라보다보면, 반투명한 막 뒤에 여러 층의 이미지가 한 겹 한 겹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평면성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는 <Folded Screen>이라 불리는 작업에서 더욱 명징하게,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정진 작가 작품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여러 종류, 층위의 이미지가 한 화면 내에 혼재된 양상일 것이다. 정진의 작품에는 원근법에 충실하게 잘 그려진 풍경과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같은 인공적이고 2차원적 이미지처럼 확연한 온도 차이를 갖는 이미지가 한 화면 위에 공존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인쇄물에서 추출한 그래픽 디자인적 이미지, 만화에서 감정을 극화해서 표현할 때 사용하는 선 등 다른 차원의 공간, 시간대, 이야기를 내포한 이미지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Folded Screen> 시리즈에서 정진은 나무 패널 위에 종이를 씌우고 일부분을 잘라내는 등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잘라낸 종이의 길이는 각기 다르며, 접어진 정도에 따라서 이미지가 노출되는 정도 역시 각기 상이하다. 이것은 이미지가 가진 각기 다른 성질을 평면 바깥으로 끌어냄으로써 직접적으로 그것의 위치를 구분하는 행위이다. 종이 뒤의 나무 패널이 노출된 부분은 종이를 지탱하고 있는 지지대를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작품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지 않는 대신 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그 자체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종이의 가장자리 부분에 남겨져 있는 여백을 통해 누적된 레이어들을 확인할 수 있다. 넓게 발린 바탕색 위에 그러진 수많은 세필 선들은 여러 장의 OHP 필름을 얹은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또한 채도 높은 단색을 이용한 강렬한 채색, 대비되어 드러나는 선의 효과는 화면 내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정진이 쌓아올린 여러 층위의 이야기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작품을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정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은 여러 종류의 이분법적 구분의 경계 위에서 중간의 위치에 놓인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반씩 경험한 30대 중반의 작가는 전통적 방식의 풍경화의 기법과 애니메이션과 같은 인공적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는다. 작품 제작에 있어서 직접 사생(寫生)을 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시각적재현물을 통해 흡수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특정 내러티브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진행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거나 설명하지 않는 대신, 회화 평면이 가진 평면성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형식적인 실험을 펼친다. 내용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형식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책에서 효과선으로 활용된 선을 화면 위에 병치시키기는 하지만, 그것을 만화와 동일하게 가져와서 출력하지 않는 대신, 라인테이프를 이용해 직접 화면 위에 구성하고 손의 떨림도 그대로 반영한다. 이것은 완전히 주관적이지도, 또한 완전히 객관적이지도 않은 선으로, 가장 마지막에 그의 화면 위를 가득 채우는 레이어다. 2010년대 초반 제작된 서사성이 강조된 이미지들과 현재의 작품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욕망, 지향점을 향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침산>은 미국의 영화사인 파라마운트의 로고에 나오는 이미지를 다룬다. 스위스의 마터호른 산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던 이 산은, 사실은 공동제작자 호드킨이 어린 시절을 보낸 유타주의 벤 로몬드 산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부분 실제 산의 풍경보다 로고로 디자인된 형태가 더 익숙하다. 그만큼 직접 나가서 몸으로 경험하는 방식보다, 영상이나 사진, 디자인 등의 방식으로 재매개된 현실을 현실보다 더 익숙하게 인지하고 기억한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회화는, 그림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든, 새로운 외피를 입든, 혹은 그 중도에서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든,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각 작가의 몫으로 남을 것 같다.

 

* 2019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 참여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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