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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1. 작가론

윤하균: 우리 옆에 있는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

by ㅊㅈㅇ 2024. 12. 5.
윤하균 <괴물> 헝겊과 수묵, 45x210cm, 2022 / <괴물> 헝겊과 수묵, 45x210cm, 2022 / <괴물> 84x140cm, 헝겊과 수묵, 2022

우리 옆에 있는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
윤하균 작가는 강직성 사지마비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 해당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근력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굳을 수 있고,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걸을 때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벽을 잡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빛이나 소음 같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도 윤하균에게는 스트레스 요소다. 이와 같은 이유로 외출이 어렵기 때문에, 윤하균은 거의 집안에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실내에서 할 수있는 일들을 주로 한다. 윤하균은 많은 시간 실내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신화,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았다. 소설 중에서는 고전이나 로맨스보다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확고한 취향을 가졌고, 여자친구들보다는 남자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톰보이였다. 그랬던 그는 한국화를 시작하여, 공모전에서도 입상하고,  2015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여러 재료를 시도해보고 실험해보았지만, 윤하균은 모노톤이고 번짐을 이용해서 그리는 한국화 재료를 가장 잘 다루고, 또한 가장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드러내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동양화 입시학원에서 먹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그때 먹이나 붓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자마자 한 달도 안되어서 인물을 비롯해, 꿩, 소, 물고기, 병아리, 개 등 다양한 동물을 그린 초기 작품들을 그렸다. 처음 선을 긋고, 면을 그려보고 하자마자 나온 그림들이라,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해당 대상을 그렸다기 보다는, 먹의 성질을 시험해보기 위한 과정이었다. 먹은 덧칠이나 추후 수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재료이지만, 윤하균은 즉흥성이나 빠른 속도감을 즐겼고, 밑그림을 그리고 한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휴지에 물을 묻혀 수정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나갔다. 그의 그림은 언뜻 보았을 때, 일필휘지로 그려낸 그림 같지만, 사실은 아주 오랜시간 고민하고, 먹을 쌓아나가면서 조금씩 수정한 것이다. 
윤하균이 현재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소재는 ‘괴물’이다. 광목에 수묵으로 그린 흐릿한 괴물은 구체적인 배경이나 세밀한 묘사 없이 화면에 덩그러니 있다. 고지라(ゴジラ, 1998)나 에일리언과 같은 SF호러영화를 즐겨보던 윤하균은, 남들보다 공포를 덜 느끼는 것은 물론, 그런 것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괴물’은 상상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존재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괴물’의 존재는 거침없이 사람들을 위협하며, 빼어난 존재감을 자랑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규범이나 규칙과는 상관없이 본능에 충실한 괴물은 그 누구도 구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공격하고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문명인으로 거듭나지만, 그 본질은 동물과 다름 없다. 동물의 세계는 곧 강한 것은 약한 것을 잡아먹고,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먹히는, 다시 말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다. 어찌보면 신체적으로 더 많은 제약을 가지고 태어난 윤하균에게 배려나 존중이 없는 동물의 세계는 더욱 가혹한 곳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일체의 것들에 대한 저항으로 ‘괴물’을 그리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컬하게 보이기도 하다.  
윤하균의 괴물은 고지라나 에일리언처럼 사실적이지 않다. 비늘이나 털과 같은 세부 요소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고 혐오스러워보이지 않도록,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낸다. 이 때문에 그가 그린 대상은 괴물보다는 ‘유령’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위협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어딘가에라도 있지만 또 자칫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윤하균은 괴물은 그저 둥둥 떠다닐 분인데,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괴물을 해치려고 하고, 제 멋대로 그 괴물은 나쁘다라고 낙인찍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의 괴물은 엄청난 힘으로 자신이 원한다면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편견없이 대한다면 무해한 존재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대상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입을 통해 전해진 괴물의 이중적인 특성은 우리로 하여금 ‘괴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윤하균은 먹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리는 대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전통과 현재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더 나아가, 여러 점을 지속해서 제작하는 연작의 방식을 통해, 괴물을 그려내는 행위는 일종의 수행처럼, 한 작품 안에서 완결되는 느낌 보다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 행위가 반복되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먹을 이용한 모든 표현 방법을 다 숙달한 작가의 생략적이고 추상화된 표현 방식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순식간에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흐릿한 그의 그림이 강한 잔상처럼 남아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앞으로 그의 괴물이 어디로 왜 가는 지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은 관객의 몫이다. 
2024.8.5 
최정윤 
* 서울문화재단 x 예술의 전당 협업전시 / <기울기 기울이기 Art of Tilting> 2024.9.26~10.15 (기획: 문유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14기 입주작가 비평 워크숍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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