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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3. 리뷰

‘솔로쇼’(2018.10.25-28와 ‘더 갤러리스트’(2018.12.14-18)를 회고하며

by ㅊㅈㅇ 2019. 1. 3.

솔로쇼’(2018.10.25-28더 갤러리스트’(2018.12.14-18)를 회고하며

전시 같기도 하고 또 아트페어 같기도 한, 정체를 명확하게 밝히기 어려운(!) 두 번의 행사가 지난 10월과 12월에 열렸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미술계에 풍성한 전시와 각종 행사들이 하나 둘 마무리되고, 저물어가는 한 해를 정리하며 몇가지 생각을 적는다.

솔로쇼’ : ‘신생공간에서 아트페어를 열다?

소위 신생공간이라 불리던 전시공간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 가능한 낡은 건물에 젊은 작가와 기획자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곳으로, 경력과작업이 어느정도 인정을 받은 작가를 (각기 다른 이유로) 다룰 수밖에 없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제도권 내의 기성 미술공간에서는 소개되기 어려운 젊은 작가의 작업과 전시를 주로 선보이는 장으로 기능한다. 장소만 있다면 SNS로 홍보하여 입소문을 내고,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니는 일부 관객들은 스마트폰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문래동, 을지로, 삼선동 등지에 위치한 신생공간을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솔로쇼가 개최되었던 독립문역 근처의 해담하우스는 재건축을 앞둔 낡은 건물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종종 신생공간의 공간이라고 여겼던 장소적 특성을 갖춘 곳이었다. 천장의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고, 벽과 바닥은 바스러진 콘크리트 조각들로 울퉁불퉁한 변변치 않은 공간 말이다. 그러나 솔로쇼에 참여한 작가들은 연령대나 경력에 있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다는 점에서 신생공간의 전시와는 분명히 달랐다.  

아트페어는 보통 코엑스나 킨텍스와 같은 대규모 컨벤션 센터의 홀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행사로, 적게는 50개 많게는 100여 개의 갤러리가 모여서 일정한 크기의 부스를 만들고, 각 갤러리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판매하는 장이다. 여러 갤러리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국내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홍보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컬렉터들 역시 한자리에서 수많은 갤러리에서 거래하는 작품을 보면서 변화된 작업 경향을 파악하거나 새로운 거래처를 만나기도 한다. 아트페어는 접근성, 부대시설, 주차 등의 이유로 대규모 도심에 위치한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되지만, 그 때문에 아트페어 참가를 위해서 참여 갤러리들은 참여 부스 비용을 500~1000만원 가량 지불해야한다. 각 갤러리는 생존을 위한 경쟁 구도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며, 짧은 기간 이뤄지는 행사다 보니 흰 부스의 벽이 천편일률적이고 비슷비슷해 보인다 하더라도 갤러리의 특성을 보여주기 위해 별도의 도색을 하거나 공간적 장치를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참여 갤러리 수가 많아 관객이 모든 부스를 꼼꼼히 다 살피기는 어려우며, 참여갤러리의 성격도 제 각각으로 들쑥날쑥하며, 고비용의 참여비를 생각해서라도 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는다.

솔로쇼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기존 아트페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단점을 보완해보고자 기획된 일종의 대안적 아트페어라고 볼 수 있다. 갤러리조선의 여준수, 갤러리2의 정재호, 스페이스윌링앤딜링의 김인선 총 3인의 디렉터는 협동작전(COOP; Check Out Our Project)이라는 컬렉티브를 만들어서 새로운 미술유통구조의 형식을 실험해보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솔로쇼에서는 비교적 젊은 감각을 가진, 진지하게 미술 작업에 임하는 작가들을 주로 소개하는 공간의 디렉터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전시공간 총 16곳을 모아 판매행사를 벌인 것이다. 별도의 임대료 없이 사용 가능한 재건축 예정인 다듬어지지 않은 오래된 공간을 장소로 삼아, SNS를 통한 홍보 전략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신생공간이 작동하는 문법을 일부 사용하였고, 여러 전시공간이 한 공간에 모여서 판매를 위한 행사를 벌였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아트페어의 작동 방식을 가져왔다. 각 참여 공간은 50만원씩의 부스 비용을 각출하여 전체 행사를 꾸렸다. 공간이 협소한 것도 있고, 부스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단순히 최대 매출만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개별 공간의 차별화된 성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각 공간은 작가를 1명만 선택하여 개인전의 형태로 작품세계를 소개하기로 하였고, 이에 전체 행사의 이름도 ‘SOLO SHOW’라고 붙이게 된 것이다. 

참여 공간의 성격 역시 기존의 아트페어와는 차별화되는데, 저렴한 참여 비용 때문에 영세한 비영리공간도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아마도예술공간, 원룸, 합정지구는 비영리공간으로 국가나 시의 지원을 받고 있거나 받았던 적이 있는 공간이다. 일부 기금마련전이나 외부 판매행사를 유치한 적 있다 하더라도 수익금은 전부 공간 운영에 재투자된다는 점에서 여타 상업화랑과는 다르다. 작가들의 실험적 작업을 지원하고 소개하는 것을 공간의 최우선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가나아트갤러리, 조현화랑, 학고재, 아트사이드, 갤러리조선 등은 주요 아트페어에도 큰 규모로 참여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상업화랑이며, 의외의 조합, 휘슬, MK2, P21은 비교적 젊은 세대의 디렉터들이 운영하는 실험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화랑은 2세대, 3세대로 가업을 이어가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운영 노하우에, 디렉터의 세대 교체를 통한 새로운 에너지를 더해가고 있다. 이렇듯 솔로쇼에는 많은 컬렉터(고객)을 가진 주요 상업화랑, 젊은 디렉터가 운영하는 세련된 감각의 신생화랑, 고객은 없지만 실험적 미술에 대한 실력과 전문성을 가진 비영리공간들이 참여해 협동작전을 펼쳐 나가며 시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높이의 흰 벽으로 구획된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솔로쇼가 이루어진 날 것의 공간에서는 각 공간에서 소개할 작가의 작품을 특색 있게 선보이기 좋았다. 낡은 벽지나 콘센트, 나무 벽을 이용해 그것과 어우러지는 데이비드 퀸의 나무 판넬 작업을 전시하기도 했으며(가나아트갤러리), 박주애의 봉제 인형 형태의 오브제 작업을 가득 쌓아 마치 인형 상점처럼 보이는 코너를 만들기도 했고(갤러리2), 어두컴컴한 작은 방 안을 독특하게 디자인된 아름다운 조명으로 가득채우기도 하였다(MK2). 이러한 디스플레이 방식은 기존의 아트페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개별적 특성이 잘 부각되어 보여지는 전시의 형태에 더 가까웠다. 작가의 개인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공간에서 한 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만큼, 공간에 대한 소개를 담은 글과, 작가의 작업 세계에 관한 글을 출력하여 공간별로 무료로 비치하여 배포하였다. 일반적으로 아트페어를 보러오는 관객 중에는 일반 대중의 비율도 꽤 높은 편이라면, 솔로쇼의 경우에는 전체 관객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비교가 어렵기는 하지만, 컬렉터 뿐만 아니라 작가와 미술대학 학생, 큐레이터와 같은 미술계 종사자 혹은 미술전문가들의 비율이 더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SNS의 홍보물을 따라 신생공간을 순례하는 미술애호가들의 동선과도 일부 겹쳤다. 다시 말해, 새로운 컬렉터를 개척하는 데 이바지했다기 보다는, 기존 미술관객의 구매를 이끌어내거나, 기존 컬렉터가 새로운 갤러리와의 거래를 시도해보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아트페어에서는 종종 한 갤러리의 부스에 5~8명의 작가 작품을 많이 걸어두고 최대 수익을 내려다 보니, 일부 작가는 여러 갤러리에서 반복적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희고 동일한 구조의 공간에 작품이 걸리다 보니 해당 갤러리가 가진 개별적 특성이 강조되기 보다는 다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솔로쇼1명의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동시에 해당 갤러리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가나아트갤러리 

갤러리 2

갤러리 플래닛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아마도예술공간 

아트사이드

원룸 

합정지구 

휘슬 

MK2갤러리 


더 갤러리스트 : 갤러리스트의 취향을 보여주다!

보통 6개월~1년 여 전에 부스 신청을 하고 준비해서 진행되는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COOP가 기획, 진행하는 두번의 행사는 모두 참여자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과 일의 진행에 있어서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다시 말해, 일정 기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일정과 상황에 따라 참여자들이 정해지는 것이다. ‘더 갤러리스트역시 총 3개월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준비한 행사이다. 참여자의 섭외와 초정은 미술계 안팎을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과 네트워크를 가진 정재호 대표의 진두지휘 하에 이루어졌는데, ‘솔로쇼에 참여했던 공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더 갤러리스트에는 가나아트갤러리, 갤러리조선, 갤러리ERD, 갤러리2, P21, 스페이스윌링앤딜링, 아트사이드갤러리, 조현화랑, 학고재, Whistle까지 총 10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솔로쇼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한 행사 더 갤러리스트솔로쇼와 마찬가지로 대안적 아트페어의 성격을 띠는데, 이 행사는 각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전시의 형태를 활용하고 있으며, 각 참여 공간에서는 각 운영자의 취향이 담긴 공간을 전시장에서 펼쳐 보였다. 실제 가구, 조명, 카페트 등 갤러리스트가 사용하는 가구나 기타 장치들을 전시 공간으로 가져와 참여 갤러리의 고유한 취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갤러리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주요하게 다루지만, 전시할 작가를 선별하고 전시를 만들 때에는 공간의 운영을 맡은 갤러리스트, 혹은 큐레이터의 관심사와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 작용한다. ‘더 갤러리스트에는 각 갤러리에서 거래하는 작가나 작품 이외에도, 갤러리스트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 역시 전시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아트페어와는 차별화된 성격을 가진다.

전시가 개최된 공간은 청담역 인근에 위치한 WAP art space,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가 디자인한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포함하는 공간이다. 이 건물은 입방체가 축적된 모양으로, 밝은 회색 벽돌로 마감됐다. 전시가 개최된 지하 1층은 높이가 8미터에 달하며 자연광이 들어와 여유로운 일상의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이 공간은 갤러리ERD의 소개로 무료로 활용할 수 있었으며, 이곳은 현재 지난 2년 동안 진행했던 전시를 모두 마치고, 추후 1층은 카페로, 지하 1층에는 5만 여권의 책과 주제 전시를 선보이는 유료 회원제로 운영될 도서관 소전서림으로 리모델링을 준비 중이었다.

WAP art space의 지하 1층 공간은 총 네 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첫번째 작은 방에는 갤러리2, 두번째 방에는 갤러리조선, P21, 아트사이드갤러리, 조현화랑, 세번째 방에는 갤러리ERD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네번째 방에는 학고재, Whistle, 가나아트갤러리가 참여했다. 가장 규모상으로는 작은 공간에 갤러리2가 단독 부스를 구성하였는데, 이동기, 김수연, 전현선, 이소정 등 작가의 작품을 벽 전체에 가득 채워서 걸어서 유럽의 살롱 전시를 연상하게 하는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종이 박스와 검정 박스 테이프로 만든 카탈로그 진열 테이블도 쾌활하고 유동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한성우, 이정형, 강석호, 백경호, 한황수, 호상근 등 젊은 작가의 비교적 작은 크기의 작업을 선보였으며, 쉽게 조립이 가능한 가구와 다양한 의자들을 배치하여 컬렉터, 작가, 큐레이터 등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제시했다.

관객은 마치 갤러리스트의 작업실에 놀러온 것 같은 비교적 편안하고 캐쥬얼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취향에 맞게 엄선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갤러리스트들과 가깝게 대화하고 그들에 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갤러리가 모여서 판매 행사를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아트페어와 유사하지만, 갤러리리스트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 응접실을 옮겨놓은 듯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더욱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도였다고 본다.

솔로쇼가 한 작가에 집중하는 행사였다면, ‘더 갤러리스트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한 명의 사람에 집중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컬렉션의 스펙트럼이 비교적 넓기 때문에, 전시된 작품을 통해서 갤러리스트의 취향을 빨리 파악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당연히 작가 한 명을 보여줄 때 발휘되었던 집중도가 갤러리스트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인스타그램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참여 갤러리 10곳의 갤러리스트 인터뷰를 담은 영상을 게재하여 접근성을 높혔지만, 모두 동일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여 평면적인 대답들이 반복적으로 나와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개별 갤러리의 특성을 더욱 잘 부각시킬 수 있도록 공통 질문과 함께 개별 질문들도 추가로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판매 자체만이 목적인 행사였다면, 수익금이 얼마인지를 밝히는 것이 행사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가 되겠지만, 사실상 이 행사는 판매보다도 각 갤러리의 차별화된 성격을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갤러리에 대한 부담감 혹은 두터운 진입장벽을 허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 때문에 수익이 얼마인가 보다도 빈 공간을 활용하여 각기 독특한 취향을 가진 갤러리들이 모여 각자의 성격을 프로모션하고, 함께 모여있음으로 해서 다름을 더욱 부각시키는 장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장기적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두 번 진행된 행사를 가지고 협동작전의 프로젝트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직 섣부른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술계라는 것이 만약 있다면, 협동작전의 3인은 이러한 미술계 시스템(영리와 비영리, 전시와 프로젝트, 아트페어 등) 내에서 실제 경험을 통해 느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참여자와 관객 모두 좀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미술품을 구입하고 또 구경할 수 있다. 각자의 생존만을 위한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 구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꾀하고, 더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테마를 가진 전시의 방식으로 구성된 이러한 행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가길 기대한다. 

갤러리 2

P21

아트사이드 

조현화랑 

갤러리조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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