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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 메모

기획전을 위한 디스플레이 목업

by ㅊㅈㅇ 2019. 11. 13.

신한갤러리 역삼에서 다음주부터 열리게 될 기획전 준비를 위해 지난달 초쯤 작가분들+디자이너+갤러리 큐레이터분들과 함께 볼 공간 1/20 목업(Mockup)을 직접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인데, 몇몇 분이 이 사진에 관해서 실제 만났을 때 이야기해주시기도 했고 그래서 블로그에도 정리해둔다. 신한갤러리 역삼은 실제 평수로는 100평이 넘는, 꽤 넓은 공간이지만 기존 사무공간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천장이 240cm로 전시장치고는 낮은 편이고, 좁고 긴 공간 특성 때문에 전시하기에 편한 공간은 아니었다. 또 큼직한, 없앨 수 없는 기둥들이 중간중간 네개나 있고, 벽에도 기둥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모든 벽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닥도 짙은 고동색의 나무 바닥과, 대리석 바닥이 섞여 있어 분위기도 좀 제각각이다. 여러차례 공간을 방문하고 답사하고, 사진을 찍고, 줄자로 길이를 재고 컨디션을 체크하기도 했지만, 목업을 만들면서 공간을 더 구석구석 알게 된 기분이 든다. 

규모가 작은 개인전 때는 굳이 이런 목업을 만들지 않기도 하지만, 기획전을 진행할 때에는 목업이 있는게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만들어 보았다. 전시디자인팀과 함께 일할 때에는 그분들이 스케치업으로 3D 구현을 해주시기도 했고, 작가분들 중에 능력자이신 분이 해주시기도 했고, 직접 만들기도 하고 그래왔다. 그래도 모니터 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만들어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선호해 왔다. 

2012년 부산비엔날레에서 로저 뷔르겔 감독이 이런 목업을 만들어서 디스플레이를 구상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워낙 디스플레이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술 감독이었던터라, 디스플레이 방법론에 대해서 강의를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실제로 쉬는 시간이 생길 때면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명품관 쇼윈도를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튼 감독은 코디네이터, 다른 큐레이터들과 목업을 보면서 디스플레이 위치나 방식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 토론하고 더 나은 방식이 있을지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부산시립미술관이라는 넓은 전시공간 여러 층을 다 쓰는 거다보니, 일하는 사람도 여러 명이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다면 일이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회의는 참 유용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왜?"라는 질문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하라면 해야지 왜라니. 그런데 어떤 작품 옆에 어떤 작품을 놓는지 결정할 때에도 이유는 각기 있기 마련이다. 순서, 동선, 배치, 구성... 그러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토론하고 결정권자의 생각을 듣는 시간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 더 나아가 수평적으로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이 일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지점이다. 

사전 계획없이 그때 그때 A 작품을 걸어 보았다가, 별로라서 B를 놓고, 왼쪽으로 1cm 옮겼다가 또 오른쪽으로 1cm 옮기고, 이런 식의 한 개인의 감각에 의존하는 디스플레이 진행 방식은 많은 사람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다. 운송해주시는 분, 설치 도와주시는 분, 작가, 큐레이터 그 외의 여러 담당자들까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계획을 한들, 실제로 구현을 해보고 나면 마음에 안드는 경우도 생기고, 불가피하게 교체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적어도 몸을 써서 뭔가를 하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토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더 좋은 결과물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작품이 가장 잘 보이고 빛날 수 있는 위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전체를 바라보고 균형과 적합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디스플레이 위치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20의 목업에 실제 크기로 줄여서 만든 작품들을 핀셋으로 걸어놓고 보면, 자그마한 인형이 그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전시를 실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동선도 새로 짜보고, 가벽도 만들어보고, 페인트칠을 해서 벽 색깔을 바꿀 수도 있고, 카페트를 깔 수도 있다. 월텍스트 위치나 크기도 조정해보고, 작가노트나 작품 설명을 비치할 선반을 고안해보기도 한다. 더 많이 준비하고 생각하면 할 수록 더 좋은 전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 좀 귀찮더라도,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목업을 만드는 일은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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