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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 메모

기획전 준비의 비하인드 스토리

by ㅊㅈㅇ 2019. 11. 13.

보통 기획전을 지원하는 재단 기금을 보면, 1000만원 정도가 주어진다. 물론 적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한 일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 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감격스럽고 큰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 예산을 항목별로 쪼개 생각해보면 보통 대관료, 운송비, 공간조성비, 설치, 작가 제작지원비, 디자인비, 인쇄비, 원고료, 번역료 등으로 쓰인다. 대관료는 적게는 200~400만원까지 들고, 인쇄, 디자인도 천차만별이지만 200~300만원은 든다. 운송, 설치, 공간 조성에서 100~200만원이 드는 걸 생각하면 작가 제작지원비를 충분하게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는 아무런 돈을 받을 수 없는데, 그것은 본인이 하고 싶은 기획전을 구현하게 해주는 지원금이기 때문이다.

여튼 기획자는 자신의 인건비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전시를 만든다. 작가를 리서치하고, 섭외하고, 미팅을 하고, 책을 읽고, 전시를 보러다니고, 주제를 구상해서, 글을 쓰고, 작가들에게 신작제작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번 움직이면 차비는 물론이거니와 하다 못해 커피 값이라도 쓰게 된다. 기획전에 작가를 초대하는 입장이다 보니 매번 회의를 할때 드는 비용도 기획자가 쓰게 된다. PM(프로젝트 매니저)라면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초대해서 기획전을 꾸리게 되는 경우, 아티스트피나 제작지원비, 혹은 구작만 가져오는 경우에라도 대여료조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다. 하지만 (자신의 인건비도 없는) 적은 예산 안에서 일을 해야하다보니 줄 수 있다하더라도 적은 비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주기 어려운 경우에는 인정에 호소해서 읍소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원래 친분이 있고 잘 아는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초대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리 떼이고 저리 떼이다 보면 그 돈은 다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예산이 부족하다. 물론 본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가족에게 빌붙거나, 다른 종류의 알바/직장을 통해 생계를 잇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강의를 하거나 심사, 번역 등 미술과 관계된 일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도 꾸준하게 일이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기획전을 한 번 하고 나면, 생각했던 주제를 전시의 형태로 공공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고, 전시가 좋은 호응을 얻거나 반응을 듣는 경우에는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만족감도 있다. 관련한 주제로 비슷한 기획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비슷한 맥락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서 원고 청탁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한번의 전시가 끝나고 나면 기획자에게 남는 것은 너덜너덜해진 육체, 텅빈 잔고, 그리고 책으로 남은 도록과 한 줄 늘어난 전시 이력이다. 그러다보니 왜 전시를 만드는가? 누가 전시를 보는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로 되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신한갤러리 역삼에서의 기획전 공모는 금전적인 지원은 없지만, 공간 제공, 운송과 설치 진행, 디자인과 도록 제작, 네오룩과 서울아트가이드 엽서 홍보, 오프닝 케이터링 등 실질적으로 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을 직접 지원해준다. (전시예산은 12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기획자가 끼어 있는 경우보다는 작가분들끼리 자료를 만들어서 어플라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기획자가 작가를 섭외해서 기획전을 꾸리면서 아무런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수 없다면 초대 자체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들이 기획자를 섭외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례가 어렵다보니 친한 사람에게 다 만들어진 전시에 글만 부탁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신한 영 아티스트 페스타 2019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보면 김성원 선생님이 "올 해 선정된 5개 팀 가운데 공식적으로 전시기획자가 기획한 전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1개팀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 전시기획자의 기획전시 비중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기를 기대해 본다. ’Shinhan Young Artist Festa’의 미래는 젊은 전시기획자와 젊은 작가들의 동반등용과 동반성장에 있다"라고 쓰시기도 했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은 참 많은 반면, 기획자 지원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이 친구들, 작업실 동기들과 알음알음 전시안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신한 측에서도 기획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는 3, 5, 7, 9, 11월 중에 가장 늦은 11월에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준비시간을 비교적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번 전시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여타 기획전을 꾸릴 때와는 달리, 이번 전시의 경우는 이희준 작가에게 연락을 받고 뒤늦게 합류하게 된 경우기 때문이다. 세 작가가 지원을 해보려고 하는데, 기획자와 같이 하고 싶다고 제안해주셨다. 세 분 중 둘은 원래 잘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평면 회화 작업을 하면서 어떤 고민/한계를 체감하고 있는지 대략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원래 작품을 가져다 놓고 어떤 전시에도 어울릴법한 중성적인 제목을 붙여서, 미학/철학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해서 만든 글을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저 행정적인 도우미의 역할로 경력 한 줄을 늘리는 일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자이면서도 동시에 생산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함께 스터디를 해서 관심 주제를 좁혀나가고, 또 각자에게 의미있는 전시가 되기 위해서 신작을 제작해보자는 데에 합의했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공부해나간다는 마음으로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시를 잘 마무리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금(1200만원)도 받을 수있었고, 사기업의 공모와 공립지원금이라 중복 수혜가 가능하여, 예산의 측면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전시를 꾸릴 수 있었다.

아래는 대략의 진행 일정이다. 1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조금씩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또한 각자의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다. 신작 제작 기간이 8~10월 석달 가량으로 시간이 아주 충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번 신작은 앞으로 이어질 작업의 프로토타입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제와 내용을 담은 작업을 하는 작가분들은 세분 이외에도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향후 리서치와 준비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규모를 키워서 후속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은 계획이 있다. 

181210 신한갤러리 역삼 공모 결과 발표

181221 첫 모임에서는 개별 작업을 소개했다. 세분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관해, 나는 내가 기획한 전시들에 관해 말했고, 각자 좋아하는 해외/국내 작가와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획자가 작가에 관해 알아야하는 것만큼, 작가들도 기획자에 대해서 알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발표를 했다. 

190124 역삼에서 선정자 전체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전시 일정과, 전체 진행 과정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발제자를 정하고 발제자가 정한 텍스트를 공유하고 리딩 모임을 주도했다. 피터 핼리의 "Abstraction and Culture"와 스벤 뤼티켄의 글 "Living with Abstraction"을 함께 읽었다. (최정윤) https://redquinoa8.tistory.com/275 https://redquinoa8.tistory.com/276

190228 David Joselit 의 "After Art"를 함께 읽었다. (최정윤)  https://redquinoa8.tistory.com/277

190329 Abstract Possible의 "On Economic Abstraction"을 읽었다. (최정윤)

190409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 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 결과 발표 

190422 Terranova의 "Network Culture" 의 한 챕터를 읽었다. (이희준) 

190524 David Joselit 의 "표지하기 스코어링하기 저장하기 추측하기", 김남시 "예술의 종언과 디지털 아트", 스크린의 추방자들에서 "자유낙하: 수직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을 읽었다. (전현선)  https://redquinoa8.tistory.com/282 

190621 Anne Ring Petersen 의 "Painting Spaces", Raphael Rubinstein의 ""Theory and Matter", "The Painting Undone: Supports/Surfaces"를 읽었다. (신현정)  https://redquinoa8.tistory.com/283

190725 David Joselit 의 "Painting Beside Itself"를 읽었고, 제목과 주제를 확정했다. (최정윤) https://redquinoa8.tistory.com/292

190821 교부신청을 완료하여 제작지원비를 입금했다.

190930, 1002, 1004 신현정, 전현선, 이희준의 신작을 보기위해 작업실 방문했다. 

191007 디자인 미팅, 디스플레이 미팅

191016 전시장 공사 관련 미팅 

191106 보도자료, 전시서문, 출품작 이미지 리스트 완성  

191111-12 전시장 공사

191115-18 작품 설치 

191119 전시장 촬영 

191120 전시 오픈  

190524 전현선 작가 작업실 근처에서 스터디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왼쪽부터 신현정 전현선 최정윤. 셋 다 체크 패턴옷을 입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희준 작가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모임때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어 이 사진이 우리 모임의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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