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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 메모

돈과는 거리가 먼.. 문화예술?

by ㅊㅈㅇ 2019. 12. 9.

 

Kristin Kossi, <Mr. Cash Money>, acrylic, collage, spray paint on canvas, 70x70cm, 2019

 

미술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다. 나부터도 그렇다. 작가도, 큐레이터도, 평론가도 모두 마찬가지다. A평론가는 지방의 미술관에서 긴 분량의 평문을 쓰고도 20만원밖에 받지 못하며, B독립큐레이터는 전시를 기획하고 기획비조로 받는 금액이 전체 전시 예산에 5%도 되지 않는 적은 수준에 그치며, 작가들은 작품을 제작할 순수 제작비 외에 인건비에 해당하는 아티스트피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제도적 개선을 요구한다. 당연히 모든 종류의 노동 글, 기획, 작품 제작은 숭고한 노동이자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에 적당한 보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창조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그 값을 단순히 시간당 임금으로 수치적으로 계산해서 일괄적으로 산출해내기 어렵다. 경력에 따라, 능력에 따라, 들인 시간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랜 기간 미술을 다루는 기관들, 미술관, 갤러리, 잡지사, 비엔날레 등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기회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쩌면 조금은 고압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 같은 마인드랄까. 물론 잘못되었고, 개선되어야 하지만, 예산 집행에서 항목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의식만 개선되어서는 불가능하다.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티스트피가 거의 책정되어 있지 않았던 예산에서 그것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다른 항목에서 지출을 삭감하던지, 아니면 전시의 갯수를 줄이던지, 인력을 축소하던지, 어떤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아니면 어디선가 돈이 뚝 떨어지던가.. 그런데 특히나 나랏돈의 경우, 미술이 아닌 방식으로 미술전시를 평가할 때 가장 쉽게 들이대는 잣대 중 하나는 숫자다. 1년에 몇 건의 전시를 하는지, 몇명의 관객이 보았는지, 티켓 판매량이 얼마인지.. 그러니까 정~~~~말 총체적인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즉각적인 개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기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 큐레이터들은 나은편이겠지만, 그들의 처우도 개선되어야하고, 더 나아가 프리랜서인 작가나 평론가, 기획자의 창작에 대한 비용 지급은 정말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사실 미술은 돈과 참 거리가 먼 영역이다. 돈을 잘 벌려면 은행처럼 돈을 가지고 돈을 만들면 된다.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한달에 몇십, 몇백만원씩을 은행에 이자로 낸다. 아니면 유망 산업군의 제조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보면 아파트나 건물을 사는 게 돈을 가장 빨리 버는 방법 같다. 그런데 미술은 생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사치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많지 않다. 작품을 잘 판매하는 화랑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매우 소수이며, 그마저도 잘 팔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까 1년에 미술대학 졸업생이 2000명이라고 친다면 그 중에 전업 작가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100명도 안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아티스트피나 초대비를 받아 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는 작가는 10명도 안된다. 이러한 힘겨운 확률싸움은 경쟁을 부추기고, 어느 경지에, 어느 수준의 인정을 받기까지 들여야하는 노력과 시간은 많은 불안감을 야기한다. 자신의 예술적 언어를 개발해내고, 그것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불안하고 답답한,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혼자 싸워나가야 하고, 막상 어디에선가 전시를 하게 된다한들 생계가 당장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쌓아온 시간은 그 어떤 금전적 가치로도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가진다.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는 작가들은 이렇게 힘겹게 생존과의 싸움을 벌이면서도, 묵묵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가며 예술적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어떤 분이 전시를 보러오셔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견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 참 대단하다는 코멘트를 해주시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창의적일 수 있느냐고 질문하시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은 분명히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집안이 좋아서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지속하는 사람의 용기와 결단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집안이 좋다고 해서 그 열정을 비하하거나 덜 대단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진짜 부자이면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돈이 많든 적든,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인 가치를 쫓지 않는 대신, 자신의 열정을 좇아 시간을 쌓아나가는 사람은 그 자체로 숭고하며, 존경의 대상이 된다. 

올해부터 지원금을 사용할 때, 일정 한도의 금액을 아티스트피나, 기획료로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뤄졌다고 들었다. 기존에는 지원금을 수령하는 당사자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인건비는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큰 변화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을 해야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진짜 창작자의 노동에 대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열정 페이' 혹은 '재능 기부' 이 따위 말들로 예술가를 착취하는 일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 최광희 라는 영화평론가가 영화계 상황에 관해 쓴 글을 최근 페이스북에서 봤다. 영화, 영상학과를 졸업해봤자 그 분야로 진출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지만, 등록금 장사에 혈안이 된 학교들은 학과를 신설해 학생들을 뽑고, 희망 고문을 당한다는 것. 스크린 독과점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국내 영화 시장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올해 <82년생 김지영>의 강도영이나 <벌새>의 김보라같은 신예 여성감독의 출현은 말 그대로 기적이라고 썼다. 

++ 김창겸 이라는 작가분이 최근 페이스북에 게재한 아티스트피 관련 제도의 불합리성에 관해 쓰신 글을 봤다. 그 비난의 화살이 일부 기관 큐레이터에게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도 아무런 결정 권한이 없는 직원 1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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