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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5. 인터뷰

사랑을 전달하는 매체, 그림책: <달달북스> 대표 이현정 인터뷰

by ㅊㅈㅇ 2021. 12. 25.

사랑을 전달하는 매체, 그림책

<달달북스> 대표 이현정 인터뷰


어린이 책의 글 작가이자 출판사 <달달북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현정을 만나 그림책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세 아이의 엄마인 이현정은 그림책여행센터 이담에서 ‘그림책으로 만나는 부모 공부’라는 강연을 진행했으며, 그림책으로 풀어보는 엄마들의 육아고민 공감방송인 팟캐스트 ‘그닮아담(그림책을 닮다 아이를 담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 『들어와 들어와』 『별일 없는 마을에 그냥 웜뱃』 『너의 특별한 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랑을 전하고자 한다.
원주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 콩세알 문화원
예전 어른들은 콩을 심을 때 한 구덩이에 ‘콩 세 알’을 넣었다. 한 알은 새, 한 알은 땅짐승,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이 거두어 먹기 위해 심었다. 다시 말해, 콩 세 알은 나눔을 상징하며,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이는 콩세알 도서관이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성장하는,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것이다.
2011년 이현정은 가족이 있던 필리핀 세부에 어린이 도서관을 열기 위해 세 아이를 데리고 이주했다. 아이의 영어 교육을 위해 많은 한국 엄마들이 필리핀에 와 있어 필리핀 세부에만 교민이 10만 명가량 되었다. 현지에서는 주로 영어, 중국어, 필리핀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를 사용하지만 주로 영어로 소통하다 보니 한국어로 된 책을 잘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도록 3천여 권의 책을 가져와 도서관을 열었다. 그러나 운영을 시작하고 1년여가 지나고 나서, 이 책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책을 반납하지 않고 이사해 버리거나 귀국해 버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느리고 프리랜서로 한국에서의 일을 이어가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현정은 필리핀의 교민 신문사에 취직해 기자로 일했다. 그 가운데 여러 교민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도서관을 하기 위해 책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했다. 말하는 대로 꿈이 이루어진다고, 물류 운송업을 하는 분이 책을 실어다 주기로 하였고, 학원을 운영하는 분은 공간을 내어주었다. 더 나아가 페이스북에 당시 상황을 적으니 한국의 수많은 출판사 지인들이 책을 기증해주었다. 그렇게 콩세알 문화원이 운영될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고 빌려주는 일 이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수업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해 교민들과 관계를 형성해나가고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콩세알 도서관은 수익 사업이 아니다보니 운영 지속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2017년 1월, 원주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사무국 팀장인 김선애가 세부의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를 리서치 목적으로 방문했고, 그곳에서의 만남을 인연으로 그림책여행센터 이담에서 4월에 80여 명이 참여한 큰 강의를 하게 되었다.

육아 레시피: 그림책으로 만나는 부모 공부
그림책은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와 부모가 읽으면서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책을 하나의 지붕으로 삼아 아이와 부모는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책 읽기의 과정은 첫 번째 사회화의 과정과도 같다. 책이라는 물리적 매개체를 기반으로,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는 공간 속에 파장을 일으키고, 아이와 가깝게 붙어 앉아 체온을 나누게 된다. 그렇게 공유된 건강하고 사랑이 가득한 말은 아이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고, 삶을 버티는 자양분이 된다. 그림책은 한 개체가 온전히 자신의 세계를 갖는 일로,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도구이다.
2017년, 이현정은 원주에서 이러한 그림책과 부모의 양육에 관한 고민을 접목시킨 강연을 진행했다. 이름하여 ‘그림책으로 만나는 부모 공부’다. 이 강의는 총 10주에 걸쳐 진행됐다. 1강은 ‘아이’라는 주제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아이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보는 시간이다. 2강은 ‘엄마 그리고 아빠’라는 주제로, 육아서에서 다루는 긍정적 부모의 모습을 탐색한다. 3강은 ‘밥’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에게 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찾아보고 다양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4강은 ‘잠’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수면습관과 그림책에 나타난 잠의 의미와 욕구를 읽는다. 5강은 ‘책’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책장, 독서습관, 독서 밸런스를 알아보고, 아이만의 책가도를 구성해본다. 6강은 ‘언어’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언어발달과 그림책의 연관관계를 살핀다. 7강은 ‘놀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다양한 놀이를 그림책에서 찾아본다. 8강은 ‘친구’라는 주제로 아이들에게 친구가 어떤 의미인지 아동발달적 차원에서 알아본다. 9강은 ‘학습’으로 육아서에서 말하는 학습과 실생활에서 이뤄지는 학습을 살펴본다. 10강은 ‘미디어’로 텔레비전 핸드폰 등 뇌과학과 아동발달의 측면에서 매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한다.
자녀의 서재에 관한 강연은 특히 큰 반향을 일으켰고, ‘어머니, 자녀의 서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부모들은 ‘책육아’에 열을 올리지만, 책을 고르는 일부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전집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지만, 이것은 부모의 요구나 필요에 맞춰 책이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요구는 아이가 원하는 것과 항상 맞지 않으며, 아이가 책에 대한 흥미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직접 보고 싶은 책을 고르는 능력이 필요하다. 책을 선택할 때에는 아이가 직접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직 어린 아이는 엄마가 구매한 전집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본다. 그러나 커 나가면서 아이의 취향을 파악하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책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실제 삶에 적용하여 사물과 책 언어의 연계를 활성화해볼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궁금한 지점을 쫓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탐색 활동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스스로 책을 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의미 없는 삶이 없듯, 그 어떤 책도 나름의 가치를 담고 있다. 재미있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림책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구체적인 그림책을 선정해 함께 읽는 작업도 진행했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 가진 장점이 다 다르다. 말이 느린 아이이더라도, 신체 운동 지능이 더 많이 발달했을 수 있다.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 삼기보다는,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어 육성하는 것이 부모에게 필요한 자질일지도 모른다. 이현정은 세 자녀를 키우면서 직접 경험한 육아에 대한 철학과 그림책을 연결해 강연을 진행했고, 강연을 통해서 수많은 엄마들을 만나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눌 수 있었다. 2017~2018년 원주에서 육아에 관해 고민하는 부모를 직접 만나 강연하는 시간을 통해 이현정의 여러 경험들은 더욱 단단해졌고, 독자들과 직접 부딪치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현정은 “원주는 나의 고향 같은 곳이고, 마치 친정처럼 나를 반갑게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원주에서의 부모 특강으로 대규모 강연의 울렁증을 극복하게 된 이현정은 강연 문의가 들어오면, 그게 어느 장소이든, 강연료를 얼마를 주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간다. 이야기를 전하고, 책에 관해 대화하는 기회는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이야기가 있는 삶
이현정은 출판사에서 여러 일을 담당하면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누군가를 돕는 역할을 주로 맡아 왔다. 그러나 항상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많았기 때문에, 작년부터 올해까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쓴 4권의 책을 펴냈다. 전집을 기획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써주는 등 책 제작에 참여한 것은 100권도 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낸 단행본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를 작가로 인식하는, ‘작가 의식’이 부족했던 것. 그러나 태초부터 우리는 모두 작가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걸 어떻게 꾸준하게 지속하느냐에 따라 작가가 되는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이현정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작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편견의 경계를 깰 수 있었고, 자비 출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원래부터 자신도 작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을 했다.
글을 쓰는 것은 비단 작가만이 하는 일은 아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 전반의 영역에 스며있다. 물건을 팔 때에도 수많은 물건 중에서 해당 물건을 차별화하기 위해 이야기가 녹아든다.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 웹툰, 글로 쓰면 소설, 노래로 하면 가수가 되는 것이다. 표출의 방식이 다를 뿐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거나 그에 해당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쓰고, 말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모두가 살면서 해 나가야할 과업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
이현정이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은 이달이다. 외국에 가서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대신 성인 ‘리’로 불러달라고 말해왔다. 그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로알드 달(Roald Dahl)에서 ‘달’을 자신이 붙인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인도어로 달은 콩을 의미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콩 한쪽의 정서와도 연결된다. 또한 달(moon)은 기울고 차면서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세상은 바뀌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출판사 이름을 달달북스라고 짓게 되었다. 달달이라고 쓰고 보니 마치 하트모양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좋은 책의 기본은 사랑이 가득해야한다”는 그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은 두 돌이 될 때까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자신의 아이를 위해 쓴 책이다. 책 만드는 사람의 아이가 왜 말이 늦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조바심을 냈지만, 아이는 만 24개월이 지나고부터 아주 유창하게 말을 했다. 이 책은 엄마인 이현정이 노래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불러주며 말 훈련을 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힘내, 안녕, 잘 먹겠습니다, 멋지다, 보고 싶어요, 행복해, 혼자 할 수 있어요” 등 세상에 존재하는 소중한 말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2013년 초등학교 국어책, 2019년 특수학교 국어책에 수록되었으며,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이현정에게 있어 책의 판매부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판매부수는 곧 책을 구입한 사람의 숫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와 함께 책을 읽을 것이고, 그럼 독자의 수는 더 늘어난다.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사기 위해 책을 찾아보고, 구입하고, 또 읽고, 이야기하고, 정리하고 보관한다. 독자들의 이 모든 행위와 그에 수반된 시간이 판매부수라는 숫자 안에 모두 포함된 것이다.
‘책이 좋으면 많이 팔린다’는 생각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책은 쏟아져 나오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독자는 수치나 숫자가 아닌 구체적인 대상이 되었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뒤에는 작가,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영업자, 서점, 그리고 시대, 독자가 있다. 좋은 책이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이 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실험해보고 있다. 출판사와 작가가 온라인으로 15분 동안 신간을 소개하는 ‘꿀시사회’, 책 한 권을 매일 30분 동안 함께 읽는 프로젝트, 번역가가 외국 그림책을 소개하는 방송 등이다. 좋은 책이 독자를 만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제안하며 즐거운 책읽기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이현정의 인생을 바꾼 두 권의 책이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사과나무와 소년의 관계를 그린다. 이 책은 열매, 가지, 줄기를 주고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까지 내어주는 나무의 행복한 삶에 대해서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를 사과나무에 비유한 것으로 읽기도 하지만, 꼭 특정 인물에 해당하여 생각지 않고, 환경이나 다른 존재로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현정은 “누군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서 누군가의 삶을 거두지 않는다면 왜 사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삶에서 마주한 고난의 순간들마다 거들떠 봐준 친구, 어른, 지인들이 있었기에 위기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누군가와 더불어 살며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이현정이 그림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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