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재미있게 놀기
그림책작가 김중석 인터뷰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도 일했던 김중석. 나이 서른일곱에 아내와 딸이 뉴질랜드로 가게 되면서 1년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딸과 편지 주고받던 것을 책으로 엮어 『아빠가 보고싶어』(2005)를 만들었다. 이 책이 그림책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림책여행센터 이담에서는 그림책 작가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또한 그림책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책을 보고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책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책을 만드는 것부터, 그림책을 전시하는 것, 또한 그림책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일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림책 만들기
그림책은 보통 글과 그림이 각기 다른 사람이 맡아서 만들어진다. 글과 그림을 한 저자가 다 맡아서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일반적으로 출판사에 글이 먼저 투고되고 계약이 성사되고 나면 해당 원고의 분위기과 어울릴만한 그림 작가를 섭외하게 된다. 글과 그림은 같이 진행되면서 그림에 맞추어 글을 일부 고치는 일도 생긴다. 동화책과 그림책을 제작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데, 동화책은 글이 다 완성된 상태에서 그림이 시작되고, 그림책은 아무래도 그림의 중요성이 크다보니 진행되면서 글이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
동화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서너 달이면 완성되는 반면, 그림책은 몇 년씩 걸리기도 하고 일정이 무제한으로 길어지기도 한다. 많은 그림들이 이제는 컴퓨터로 그려지는 시대이지만, 김중석은 여전히 다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린다. 종이에 직접 그려서 스캔하는 방식이다. 캔버스에 그리면 사진으로 촬영해야하는데, 아무리 좋은 스튜디오에서 섬세하게 사진을 찍는다 하여도 종이에 그린 그림을 스캔하는 것보다 원본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지 못해 종이를 고집한다. 종이 위에 사용하는 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나오니까 좋다』(2018)는 오일파스텔, 수채화, 『그리니까 좋다』(2020)에는 콜라주, 펜, 물감 등 여러 재료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했다.
최근 들어서는 그림책 작가를 하고자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였지만, 결혼, 임신, 출산 이후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는 작가들도 많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처음 접하게 되어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고, 경력 단절을 뛰어넘고 직접 그림책 제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이야기를 잘 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글과 더해진 책이라는 매체는 관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의식하는 부분이 있어, 작가는 소통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림책은 굉장히 대중적인 미술인 셈이다. 물론 창작자가 제작한 콘텐츠를 독자가 창작자의 의도대로 받아들이기만 하지는 않는다. 독자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접근하게 된다.
김중석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그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책은 아무래도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아 쓴 작품 『아빠가 보고싶어』(2005)와 『나오니까 좋다』(2018)일 것이다. 『아빠가 보고싶어』는 ‘기러기아빠’라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을 소재로, 아이가 이국땅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노력과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 책이다. 『나오니까 좋다』는 캠핑을 떠난 고슴도치와 고릴라의 이야기로, 짐을 꾸리고, 운전을 하고, 텐트를 치고, 캠핑을 가기 위해서는 힘든 일이 많지만, 막상 가서 함께 저녁을 만들어먹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에 느낄 수 있는 행복감 때문에 또 오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림책 외에도 『그리니까 좋다』(2020)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2017)와 같은 그림 에세이도 책으로 나왔다. 그림만 그린 책은 100여 권이 넘는데, 그 중에서도 『웨이싸이드 학교 별난아이들』(2006)은 독특한 상상력을 담은 책이다. 보통 외국 그림책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판되는 경우, 그림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 그림 작가의 그림이 더해진다. 서양에서는 삽화가 비교적 단순하고, 색도 넣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림책 전시하기
김중석이 가장 처음 그림책 전시를 기획한 것은 2013년 파주출판단지에서 한 <어린이책잔치>다. <어린이책잔치>는 출판인들이 직접 준비하는 살아있는 책 놀이터로, 어린이가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매년 새로운 주제로 어린이책을 조명해 테마전시를 꾸리며, 작가와의 만남, 책 만들기 체험, 동화 구연 방식 개발, 미니 콘서트 등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김중석은 <어린이책잔치>에서 전시 기획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그림책전시 기획을 할 기회가 계속 생겼다.
2016년 김선애 국장의 연락으로 만나 원주에서도 그림책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2016년 겨울,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담 문아리 공간에서 첫번째 전시로 <HELLO! 따뚜씨티>(2016.12.7.~24)를 개최할 수 있었다. <HELLO! 따뚜시티>는 그림책 체험전시다. 따뚜공연장 1층 복도를 그림책 작가 6명의 신간 그림책으로 하나의 도시를 구성했다. 김리라 작가의 『박물관』 『두꺼비가 간다』, 박종채 작가의 『극장』, 김규택 작가의 『책방』 <『소중한 하루』, 윤태규 작가의 『분식집』 등 체험 중심으로 다양한 그림책 콘텐츠를 선보였다. 구석구석 볼거리로 가득 채워진 전시장에서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여러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림책 전시는 대부분 책의 원화를 프린트해서 전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의 개념을 3차원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책 속의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기도 하고, 혹은 전시 공간에 맞추어 새로운 수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책에서 인상적인 한 장면을 뽑아내서 체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들이 원하는 대로, 컨셉트에 맞추어 공간 내에 다양하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림책에는 이야기도 있고, 이미지도 있고, 그에 맞춰 여러 활동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보니, 전시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또한 어린이라는 고정 관객층도 있어 호응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많아 현장에서는 어른들의 반응이 더 좋은 경우도 많다.
이후로도 매년 전시기획자, 컨텐츠 디렉터, 작가로도 참여하는 등 원주그림책도시 프로젝트와 관계를 지속해왔다. 보통 그림책 전시는 컨셉트를 정하고 그게 맞는 책을 골라 작가를 섭외하기도 하고, 또는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작가들로 구성해서 전시를 하기도 한다. 책이 좋아도 전시로 펼쳐 보이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외하기도 한다. 섭외가 이뤄지고 나면 작가들에게 모든 재량을 주고 전시기획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체가 어우러지게 구성하고, 동선을 짜는 전시 감독의 역할 말이다.
2020년 9월에는 문아리공간 5.23에서 그림책전시 <별 일 없지? 곧 맑아질거야>(2020.10.6.-25)를 기획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은 단순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에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자기만의 공간에서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며 그림책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이명애 작가의 『내일은 맑겠습니다』, 이지은 작가의 『사계절』, 고정순 작가의 『길벗어린이』, 조오 작가의 『웅진주니어』, 최민지 작가의 『마법의 방방』을 소개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슬기로운 그림책 생활’이다.
김중석은 그림책 전시를 하면서 독자에게 홍보하는 방식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고, 우리나라의 좋은 그림책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에 매료되었다. 그림책을 즐겨보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우리 작가들을 잘 모를 수 있는데, 이러한 전시나 행사를 통해서 개별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게 되고 독자가 확장되는 경험이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책 만드는 수업하기
김중석이 하고 있는 또 다른 일 중에 하나는 그림책 만드는 수업을 하는 일이다. 독자들이 직접 책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는 체험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두 자신없어하며 시작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물은 매우 소중하고, 재미있고, 또 만족스럽다고.
그림책작가로 활동하면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독자와 창작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자가 창작자가 되기도 하고, 직접 책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통해 더 깊은 독자가 된다. 말로만 하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더 깊이 공감하며 예술이 일상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독자가 그림책 작가가 되어서 함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기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결과물로는 순천 할머니들과 함께한 그림책으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2019)가 있다. 가난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글을 익히고 용기를 내 그림을 그려 완성한 책이다. 글과 그림은 그들에게 치유와 행복의 시간을 주었으며, 따뜻하고 유쾌하지만, 웃음 뒤에는 눈물이 맺히는 감동을 담고 있다. ‘순천 소녀시대’라 불린 할머니들과 이 책은 이후에 방송에도 수차례 나오고 해외에서도 전시하시는 등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할머니, 주부, 어린이 등 참여자의 삶을 녹여내는 매체로 그림책이 갖는 힘이 매우 크다.
어른들의 경우에는 집중을 잘 하는 편이지만, 참여자가 어린이일 경우에는 집중력이 짧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생각을 이미지로 추출하도록 유도하고, 간단하게라도 말이 되든 안되는 스토리텔링의 경험을 해보도록 한다. 이야기를 짓는 것과, 그것을 묶어서 책으로 엮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라 매우 중요하다. 한 장의 상상화를 그리는 것과, 그것이 여러 점이 모여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강연자로서 김중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참여자에게 더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그림책 만드는 수업에서 김중석은 참여자가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물성을 가진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가르친다. 수업에서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출판된 책처럼 각 이미지를 스캔하고 디자인해서 하드커버로 된 여러 권의 책을 만들도록 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복제된 책으로 나온 것을 만져보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꼭 그렇게 한다.
원주 그림책 도시 사업에 관해 김중석은 이렇게 말한다. “저를 외부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사실 거의 내부자나 마찬가지죠. 원주가 이렇게 그림책으로 많은 행사들을 잘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기획전이나 공간이 생기기 이전부터도 2004년 패랭이꽃 그림책버스 같은 그림책 독자들이 있을 수 있었던 든든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시를 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준비가 잘 되어 있던 도시에서 그림책전시를 하면 그만큼 호응도도 큽니다. 한명의 독자가 소식을 퍼뜨리면서 관심이 확산되는 경우가 많아요. 컨텐츠가 든든하게 준비된 곳이라야 행사도 성공할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은 요즘 그림책을 분석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다. 그렇지만 김중석에게 있어 그림책은 가까이 있는 대상, 함께 노는 도구이다. 무엇보다도 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보기 싫으면 보지 않을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한 번씩 책들을 꺼내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김중석은 누군가에게 억지로 책을 쥐어주고 읽도록 하는 것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Art > 5.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을 전달하는 매체, 그림책: <달달북스> 대표 이현정 인터뷰 (0) | 2021.12.25 |
---|---|
즐거운 우리의 '노동'에 관하여: 아워레이보 디렉터 이정형 인터뷰 (0) | 2021.07.07 |
[인터뷰] 사적인 이야기로의 초대: 함혜경 작가 인터뷰 (0) | 2019.09.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