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 기획자의 협업사례
특정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획, 편집, 공간 운영 등의 일을 두루 도맡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독립 큐레이터’를 줄곧 사용해 왔다. 미술관/박물관 큐레이터가 작품 수집, 보존, 복원, 자료 관리, 전시 기획, 교육 등을 폭넓게 담당하고 있다면, 독립 큐레이터의 역할은 기획, 매개에 더 치중돼 있다. 독립 큐레이터들은 그들의 사무실을 마련하고,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 공간 섭외 등 물리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데 각 기관에서 주최하는 전시기획공모에 응모하는 방법이 있고, 그 외 대부분의 경우 공공기금에 의존한다. 혹은 전문 기획자를 필요로 하는 행사에 초대되어 특정 기간 동안에 주어진 일을 하게 되는 때도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독립 큐레이터 몇몇이 모여 그룹을 형성하고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꽤 있다. 기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개별 활동을 동시에 도모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공간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 역시도 팀으로 활동하였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협업 파트너에 관해 질문한다. ‘독립’하겠다고 어디에선가로부터 뛰쳐나온 이들이 왜 뭉치는 걸까?
유능해지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는 팀명의 ‘유능사’는 안대웅과 최정윤으로 이뤄졌다. 2012년 결성 이후, 월간 『아트인컬처』 뉴비전 평론공모에 팀으로 응모했고, 이후 2013-2014년에는 웹진 『똑똑 커뮤니티와 아트』를 운영했다. 평론공모에 팀으로 응모한 이유는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의견 교환이 충분히 이뤄진 터라 둘 중 한 명 만의 것이라고 명확히 지시하는 것이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 웹진을 운영할 때에는 필자 섭외, 격월로 주제 선정, 교열 및 글 게재, 행정 처리, 정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분담하여 처리했다. 함께 기획한 전시로는 영등포의 커먼센터에서 열린 <청춘과 잉여>(2014.11.20.~12.31)가 있다. 이 역시도 둘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도출하게 된 아이디어로, 기금을 받아 전시로 현실화할 수 있었다. 다섯 가지의 주제로 각기 다른 세대의 작가 둘이 협업하여 신작과 구작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였다. 안대웅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시 내용적인 측면을 고민하는 데 치중했다면, 최정윤은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프로젝트만을 하면서는 현실의 삶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3년여 간의 공동 활동 이후 현재는 각자의 활로를 이리저리 탐색 중이다.
여러 가지 다른 대상을 한데 엮는 매개자라는 의미의 큐레토리얼 팀 ‘더바인더스’는 박경린과 조주리로 구성됐다. 헤이리예술마을 기획팀에서 만난 둘은 사무실을 오픈하면서 듀오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기획공모에 선정돼 예술적 협업에 관한 전시 <2의 공화국>을 선보였으며, 그 외에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해저지형을 주제로 한 전시, 동경국제도서전 주빈국관 전시 등을 맡아서 진행했다. <2의 공화국>은 “현대미술에서 두드러지는 2인 협업 체제의 창작 방식을 유형화해 살펴보고 그 과정을 섬세하게 조명하고자” 기획된 전시로, 당시 듀오 작가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주목을 받았다. 전시는 건축, 패션디자인, 음악, 출판 등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며 창작에서의 협업을 다뤘다. 1년여의 시간동안 듀오로 활동한 이후 조주리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박경린은 서울시립미술관과 YG가 주최한 <피스마이너스원>(2015.6.9.~8.23), 2015년 공예트렌드페어(2015.12.17.~20) 등의 기획을 맡아 미술과 타 장르가 만나 더 재미있어지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술이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끊임없이 대중과의 소통을 꾀한다.
작업에 대한 작업이라는 뜻을 가진 팀 ‘워크온워크’는 박재용과 장혜진으로 구성되었으며,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공동 기획한 전시 및 프로그램으로는 <흩어지는 전술 HIT and RUN>(2011.5.16.), <당신의 머리 위에, 그들의 발 아래>(2012.7.26.~8.11), <모빌리티의 꿈>(갤러리팩토리, 2013.4.25.~5.24), <헛기술>(워크온워크스튜디오, 2015.11.26.~12.26) 등으로, 매년 1-2건의 전시를 기획해 왔다. 이들은 공동의 글쓰기 방식을 활용해 한 편의 글을 함께 쓰기도 하며, 그 외에도 프로덕션과 컬렉션, <큐레이팅 스쿨 서울>(2013.11.11.~12.26)과 같은 프로그램 기획 등 미술계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프로젝트별로 웹페이지를 구성해 누구나 해당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워크온워크의 강점이다. 이후 두 멤버는 일민미술관, 미디어시티서울 등 각기 다른 기관에서 일하며 큐레이터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등 느슨한 공동체를 유지했다. 한 인터뷰에서 박재용은 전체적인 방향을 공유하는 가운데 멤버가 변할 수 있어 유동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청각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현시원과 안인용은 기획자 듀오라기보다는 ‘공동 디렉터’에 더 가깝다. 대학시절 학보사 동기로 만난 둘은 2006년 독립잡지 『워킹매거진』을 함께 창간하였고, 2013년 시청각을 오픈했다. 시청각은 기존 갤러리나 대안공간과는 다르게, 기획자 둘이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 실행하는 플랫폼으로, 출판이나 토크 등 전시 외의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한다. 둘은 오랜 시간 일을 같이 했지만 매번 명확히 역할을 나누거나 운영 체계를 갖추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융통성 있게 일을 해왔다. 현시원이 미술의 영역 내에서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한다면, 안인용은 미술 바깥의 언어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할 때 해석의 가능성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각종 기금의 수혜와 함께 김형재, 홍은주, 이수성, 박길종, 김동희 등 좋은 동료들을 만났기에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큰 어려움 없이 운영을 할 수 있었다고. 앞으로도 그들이 즐거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지속해나갈 예정이다.
미팅룸은 2010년 12월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황정인, 홍이지, 지가은이 만나 결성한 자발적 학습모임이다. 이후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쳐 2013년 2월 네이버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꾸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미팅룸’은 기획인력의 전문성을 확대하기 위해 각지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 아키비스트, 작품복원가, 연구자가 리서치한 전문 지식을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미팅룸 오픈 이후 이곳에 게재된 컨텐츠를 보고 연락해오는 사람이 늘어나 현재는 세 명의 운영자 이외에도 8명의 객원 에디터가 함께 참여한다. 비영리단체인 만큼, 원고료는 지불하지 않으며, 각자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운영된다. 2015년 열린 <미묘한 삼각관계>(서울시립미술관, 2015.3.18.~5.10)에서 미팅룸이 함께 연표 제작에 참여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의 아트씬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관, 잡지, 비엔날레 등을 인덱스 형식으로 만들어 인덱스룸(indexroom.co.kr) 홈페이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2013년 8월부터는 대학로예술극장에 윈도우 갤러리인 프로젝트스페이스 Stage 3x3의 운영을 맡아, 기획자 한명과 작가 한명이 함께 유휴공간을 활용한 실험을 펼쳐 보인다. 또한 지정 리뷰어가 해당 전시의 평문을 작성한다. 최근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경력직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아시아 미술현장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미팅 인 아시아>를 기획하는 등 활동 범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혼자 가다보면 쉬이 지치게 마련이라 서로 격려하고 배려할 때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 인(人)자도 한 명이 다른 한명을 받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동물이며, 가까운 동료의 행동,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동료를 만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리타분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상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고난을 극복해낼 수 있도록 하는 긍정 에너지다. 이 같은 에너지는 개인이 즐겁고 행복할 때 자연스레 생긴다. 평가의 기준이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어 스스로를 옭아매는 순간 불행이 싹튼다. 취향이 일치하여 하나가 아닌 여럿이 되어 더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하면, 반대의 의견이 도출되는 가운데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균형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말과 생각들이 모아져 훨씬 더 단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혼자였을 때는 불가능하다 여겼던 일들이 둘이기에, 셋이기에 가능해져서 더욱 흥미로운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 갤러리구에서 창간 준비중인 <그래비티 이펙트> 에 송고한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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