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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1. 작가론

[작가론] 김연용(Yeon-Yong Kim): 규칙, 공동체, 그리고 관계

by ㅊㅈㅇ 2016. 5. 3.

 

 <스틸 라이프스틸 라이프>(2003)


규칙, 공동체, 그리고 관계

: 김연용의 작품을 돌아보며

 

1. <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2003)는 이전하기 이전의 인사동 사루비아다방에서 작가 박기원과 함께 참여한 2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75cm 높이로 시멘트 벽에 바니쉬를 바른 박기원의 작품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 내듯, 김연용은 전시장 내부의 캐비닛을 모두 열어서 그 안쪽에 위치한 사무용품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싱크대, 소주병, 냉장고, 도록, 에어콘 등 무대의 뒤편에 해당하는 구역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공개됐다. 다양한 종류의 사물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구획에 맞게 기능별로 혹은 랜덤하게 분류돼 적체되어 있는데, 작가는 그 형태 속에서 사물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규칙-혹은 연대감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려 했다. 캐비닛 안의 사물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그곳에 놓인 것일진대, 다시 말해, 그 사물이 주체적으로 그곳에 있기로 결정한 것이 아님에도 작가는 그것을 하나의 공동체로 읽은 듯하다.

<거듭 쓴 양피지: 뉴몰든, 런던>(2007-8)

2.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김연용은 골드스미스칼리지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영국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거듭 쓴 양피지: 뉴몰든, 런던>(2007-8)은 그 시기 제작한 작품으로, 런던 외곽에 위치한 한인 타운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풍광에 관심을 두었다. 그가 포착한 장면은 대개 건물의 파사드(facade)인데, 건축물의 형태와 현재의 기능이 어긋나는 경우, 혹은 두세 가지 이상의 문화적 요소가 이질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일례로, 대충 지워진 KINGSTON이라는 위에 낙원떡집이라는 문구가 함께 새겨져 있는 간판이 보이고, 또 전형적인 영국식 주택 창문가에는 창호지 문양의 시트지가 붙어있다. 이주민의 유입으로 하나의 건축물에는 각기 다른 문화적 요소가 겹쳐서 축적된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문화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모양새다. 이전의 흔적과 현재의 모습은 어색하게, 혹은 자연스레 한 공간에 함께 스며있다. 김연용은 이 같은 혼성적 풍경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중립적인 태도로 특정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형을 포착해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영국으로 이주해서 새롭게 자리를 잡은 한국인 공동체의 어떤 흔적과도 같다.

<다른 장소에서>(2007-8)

3. 영국에서 진행한 또 다른 작업으로 <다른 장소에서>(2007-8)<조각적 아카이브>(2007-8)이 있다. <또 다른 장소에서>는 골드스미스칼리지 대학원 학생들에게 일주일 동안 자신의 작업공간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바꾸어 사용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동시적 공간적 체험을 모두 포함하는 작품이다. 이사를 하면서 서로의 짐 옮기는 일을 돕고, 변화된 공간에 적응해가는 모습도 확인하며, 일시적으로 생기는 새로운 관계를 마주하게 되는 공동의 체험을 기록한 작품이다. 잠시나마 물리적 환경을 맞교환한 참여자는 서로가 속해있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공동체 안에 포함되었다가 다시금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두 참여자는 이같은 실험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조각적 아카이브>는 버스 정류장의 부스라든지, 공공조각이 놓이는 단상과 같은 공공기물의 형태를 조각적으로 아카이브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합판, 각목, 비닐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공공기물의 외관을 재구성했는데, 버스정류장 부스의 경우는 천장이 뚫려있고, 단상은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있는 등 원래의 기능, 목적과는 부합하지 않도록 일부 형태적 변형을 가했다. 공공장소에 놓인 기물, 조각 등은 특정 지역의 사람들-공동체-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거나, 특별히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식 혹은 감각이 존재하는 대상일 것이다.

<화이트 엘리펀트>(2009-10)  사루비아다방 설치 전경.

 4. <화이트 엘리펀트>(2009-10) 역시 영국에서 진행한 작업으로, 영국 곳곳에 남아있는 공장지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세기의 공장은 거대한 기계로 가득한 이동 불가능한 공간이었다면, 21세기의 공장은 작은 컨테이너 박스로, 언제든지 노동력이 더 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간편한 구조를 갖췄다. <거듭 쓴 양피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컨테이너 위에는 여러 개의 로고가 혼재되어 있다. 자본의 이동에 따라 모토롤라의 공장은 현대의 공장으로 손쉽게 바뀌기도 했던 것이다. 작가는 직접 현장답사를 거쳐 장소를 선정하고,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대형 복사기로 흑백 복사해 두 장씩 출력하여 디스플레이 했다. 또한 LG, 삼성, 현대 등 한국 대기업과 연관된 해외 공장 신문기사 텍스트 중 일부를 발췌하여 랜덤하게 배치하고 사진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프로젝션하기도 했다. 이전 작업에서도 그러했듯이 작가는 직접적인 언급 대신 관객이 전시장이라는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상상할 수 있도록 힌트들을 동등하게 흩뿌려두기만 할 뿐이다. 작품명 화이트 엘리펀트는 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것을 의미하는 영어적 표현이다. 특정 기업이 버리고 떠난 컨테이너 공간에 또 다른 기업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중첩지대. 작가는 이 장소를 쓸모없는 곳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마주한 공동체> 2013

 5. 장 뤽 낭시의 그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공동체와 함께, 우리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와 함께, 함께라는 것과 마주하고 있는 함께라는 것과 함께이 같은 텍스트로 시작되는 영상 <마주한 공동체>(2013)에는 리넷 이아돔-보아케(Lynette Yiadom-Boakye), 카예 도나지에(Kaye Donachie), 캐린 맘마 앤더슨(Karin Mamma Andersson), 웨인 곤잘레스(Wayne Gonzales), 크리스토퍼 오(Christopher Orr)의 회화작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해당 회화작품을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선별하였으며, 함께 공유하는 체험, 정서적 공감대 등을 시각화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몇 작품은 이것이 꼭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장 뤽 낭시의 글, 작품명, 이미지만을 보고 관객은 나름의 추론을 할 수 있게 된다. 무성필름인 이 작품은 중간 중간 캡션이 나오고, 화면을 가득 메운 숫자도 등장하고, 이미지들도 확대되고, 일부만 잘려 영상이 만들어 낸 시간 속에 마구 뒤섞여 있다. 실제로 영은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을 때 작가는 모든 관객이 사전예약을 하고 공간 안에 한명씩 들어가서 영상을 독대하도록 구성했다. 작품과 관객의 직접적인 관계 맺기의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품 선정 이유, 형식적 구성 무엇 하나 명쾌한, 객관적인 규칙을 찾는 것은 어렵다. 대신 마치 작가가 특정 작품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얼마나 꼼꼼히 뜯어보았는지,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게다가 이 같은 만남이 관객의 자발적 예약을 통해 일대 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절대로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는 강제성 같은 것이 있는 셈이다. 느슨하게나마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회화 작품을, 작가는 관객에게 비선형적인 흐름 안에서 에둘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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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부터 지금까지 김연용은 공동체, 규칙, 관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그것은 각기 다른 표현방식, 재료, 전시 형식 등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스틸 라이프>에서는 캐비닛 안의 사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았으며, 박기원이 만들어 낸 흐름에 균열을 만드는 행위를 가했다. <거듭 쓴 양피지> 또한 이주한 한국인 공동체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그가 포착한 장면들은 이질적인 두 문화가 한데 뒤섞여있는 어정쩡한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른 장소에서>에서 두 참여자는 서로 작업실을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영역에 일시적으로 침투했다가 빠져나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경험을 공유한 사이가 된다. <조각적 아카이브>는 특정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기물이나 조각 등의 일부를 변형하여 만든, 기능에서 살짝 벗어난 형태 그 자체이다. 2009년부터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관객과의 관계 맺기 방식에 있다. <화이트 엘리펀트>에서는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문구 일부와 이미지를 랜덤하게 배치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마주한 공동체>는 작품과 관객 한명이 독대함으로써 메시지 전달이 더 또렷해진 듯하지만, 내용적으로 영상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택한 회화 작품 다섯 점을 규칙을 찾기 어렵도록 뒤섞어 만들어 끊임없이 생각을 멈추지 않도록 유도한다.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지엄>은 미술관의 공적 기금 축소로 기획전 준비가 어려워지자, 소장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세 미술관의 케이스를 연구해요. 과거의 미술사 맥락 아래 있는 소장품을 재 맥락화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고, 교육적 기능을 강조하며, 역사를 재인식하게 만드는 것이죠. 미술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지 않고, 마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듯, 하나의 정보나 공유재로서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 말하고 있어요.”

 그의 새로운 작업 <그림이라는 증서: 동시대 회화에 대한 도큐멘트>(2013-16)는 작가의 신화성, 미술사, 미술비평 등 기존의 맥락에서 작품을 떼어놓고, 미술 작품을 모두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기록물로 본다. 어쩌면 작품을 읽는 하나의 방식이란 없다는 것을, 미술에 있어서 규칙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의 관심사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져나갈지 궁금해진다. * 

 

* 금천예술공장 비평가매칭 프로그램 결과물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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