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투명함을 닫는 일과 어두움을 여는 일
일시 2018. 4. 27 (금) – 5. 8 (화), 12일간
작가 김명진, 김민정, 김이박, 오제성, 이상용, 이향안, 전아라, 정지현, 조혜진, 황문정 (총 10명)
주최 어반 콘크리트
기획 박지형
장소 서울시 관악구 조원로 25 강남아파트 18동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 도보 5분)
사실 전시는 못 봤다. 전시를 기획한 박지형 큐레이터는 원래부터 알던 사람도 아니다. 어느 날 부산 홍티아트센터에 입주한 이향한 이라는 작가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다. 잘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고, 시간에 맞춰 미션도 컴플리트!했다. 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박지형이라는 큐레이터가 추천을 했다고 했다. 지금은 페리지갤러리에서 일하고 이 전시 <투명함을 닫는 일과 어두움을 여는 일>의 기획자라고 했다. 텀블벅을 통해 모금을 해서 만든 도록이라며, 전시가 끝난지 시간은 좀 지났지만 도록이 나왔다고 이향안 작가에게 다른 작가의 전시 개인전 오프닝에서 이 도록을 한 권 건네 받았다. 강남아파트는 일전에 함혜경 작가가 그룹전에 참여해서 한 번 가본 적 있었다. 그 이후로 다른 기획전이 있는지는 몰랐어서 직접 가서 보지는 못했다. 재개발을 앞둔 낡은 아파트이기에 전시장 컨디션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폐허에 가깝다.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쳐들었는데, 정말 단단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왠만한 국공립 미술관 전시 도록 보다 훨씬 알찼다. 박지형의 기획의 글, 송현주의 <강남아파트 1974-2018>, 어반콘크리트 이상용이 아파트에서 주차관리를 하던 중년 남성과 진행한 인터뷰 글, 그리고 전시에 참여한 10명의 '사용자'에 관한 총 1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여러 집들이 전시 베뉴로 사용된 것 같았다. 그래서 각 작가별 섹션 구분을 각 사용자가 사용한 아파트의 호수를 적는 방식으로 했다. 1813호 황문정&김민정, 1833호 김명진, 1834호 오제성, 1853호 이향안, 1863호 김이박, 1864호 전아라&조혜진, 1874호 이상용 등. 각 호수 마다 방의 구조가 달랐기 때문에 인트로를 평면도와 캡션으로 넣고, 박지형 큐레이터가 쓴 각 작가에 대한 글을 실었다.
박지형씨의 글은 비교적 담담하고 객관적인 문투로 작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쓴 느낌을 주었다. 사실 내가 전시를 직접 보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작가도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만나고 작품세계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이향안의 경우에 특히 그렇게 느꼈다. 사실 그럴싸한 미술이론이나 큰 단어들 가져다가 끼워맞추거나,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식의 글 보다도, 간명한 언어로 작품을 언어화하는 종류의 글을 나는 좋아한다. 글을 기반으로 쓰는 글 말고, 작품을 기반으로 쓰는 글 말이다. 나는 이런 형태의 글이야 말로, 진정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큐레이터의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뒷 부분에는 강남아파트에서 전시를 기획한 불량선인(곽노원, 조현대, 허남주)과의 대담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마지막에는 주최자로 명시되어 있는 어반 콘크리트(김명진&이상용)의 닫는 말 글이 실려있다.
전시를 둘러싼 면면을 언어화하는데 매우 성실하고 진솔하며, 인터뷰, 글 등 다양한 접근 방법을 유연하게 잘 채택하였다. 총 200여 페이지나 되고, ISBN도 받았다. 이 전시가 그리고 도록이 기금도 없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더 신기하고 대단하다.
이 책을 받아서 읽고 보고 책장에 꽂아둔지도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 지금에 와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하나이다. 싫은 사람이 왜 싫은지 욕할 시간에, 좋은 사람이 왜 좋은지 말하는 게 나의 정신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아서!
박지형(b.1990) / 동 세대 미술 전반에 산발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소위 미술계라 불리는 생태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박물관학 석사와 코톨트인스티튜트오브아트에서 미술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을 거쳐 현재 페리지갤러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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