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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현주, <시간의 동물> 중 일부 여기 예순이 좀 지난 남성이 있다. 이름 난 기업에서 신입사원부터 고위 임원직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일한 뒤 서너 해 전에 은퇴했다. 은퇴 직후에는 좀 작은 규모의 회사 두어 곳에서 고문 명함을 건네준 덕에 사회 속 좌표를 유지하며 살았지만, 그마저도 이젠 지난 일이다. 은퇴 후 그의 모든 순간은 내리막의 시간을 구성하는 일부다. 모든 순간이 과거와 경쟁한다. 과거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지금은 과거와 이어지는 선상의 일부다. 내리막의 시간에 사는 그의 지금은 언제나 최저치를 갱신하고, 그래서 그의 순간들은 언제나 남루하다. 그는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려고 분투한다.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체성의 닻을 과거에 둔다. 뱉어지지 않은 채 마음속을 맴돌고 있는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2016. 5. 4.
[작가론] 김연용(Yeon-Yong Kim): 규칙, 공동체, 그리고 관계 (2003) 규칙, 공동체, 그리고 관계: 김연용의 작품을 돌아보며 1. (2003)는 이전하기 이전의 인사동 사루비아다방에서 작가 박기원과 함께 참여한 2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75cm 높이로 시멘트 벽에 바니쉬를 바른 박기원의 작품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 내듯, 김연용은 전시장 내부의 캐비닛을 모두 열어서 그 안쪽에 위치한 사무용품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싱크대, 소주병, 냉장고, 도록, 에어콘 등 무대의 뒤편에 해당하는 구역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공개됐다. 다양한 종류의 사물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구획에 맞게 기능별로 혹은 랜덤하게 분류돼 적체되어 있는데, 작가는 그 형태 속에서 사물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규칙-혹은 연대감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려 했다. 캐비닛 안의 사물들은 누군가에.. 2016. 5. 3.
[전시 리뷰] 원앤제이갤러리, <한숨과 휘파람>(2016.4.15~5.13) 원앤제이갤러리 전시전경 (사진출처:www.oneandj.com) Richard Hamilton,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1956) 권경환, 금혜원 작가의 2인전 (2016.4.15-5.13)이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은 크게 1층과 2층으로 나뉘고, 각 층 역시 약간의 레벨 차이를 두고 반씩 나누어져 있어 총 4개의 레벨로 이뤄진 공간이다. 두 작가의 작품은 마치 하나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1층의 가장 아래 레벨에는 권경환 작가의 L자 앵글로 만든 구조물들이 벽과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어떤 것은 선반 같아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책꽂이, 옷걸이, 혹은 아무 기능이 없는 어떤 장.. 2016. 4. 29.
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인식」, 1981 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인식”, 1981 리차드 볼턴, 『의미의 경쟁(20세기 사진비평사』, 눈빛, 2001, pp.25-35.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1980년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미술관이 설립된 첫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당대 회화, 조각, 건축, 판화, 디자인 작품이 전시됐다. 뒤샹의 가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작품이었으나, 전통 장르 중 어디에 소속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려웠으며, 전반적으로도 회화나 조각보다는 사진, 영화, 디자인 작품이 더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MoMA의 50주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사진은 이 전시보다 피카소 회고전과 앤셀 애덤스 사진전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그 시기에 에서는 피카소 특집을 마련하.. 2016. 4. 28.
로잘린드 크라우스, 「아방가르드의 독창성: 포스트모던적 반복」 1981 로잘린드 크라우스, “아방가르드의 독창성: 포스트모던적 반복”, October, Vol 18. Autumn 1981, pp.47-66. 1981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는 “사상 최대의 로댕전”을 개최했다. 전시에 맞춰 은 공개 직전에 새롭게 제작됐는데, 이것은 로댕이 죽은 지 60년이나 지나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많은 관객은 위작 제작현장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로댕은 죽으면서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을 청동으로 주조할 권리를 포함한 전 재산을 프랑스 정부에 헌납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은 진짜 원작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로댕이 죽기 전에 은 만들어진 적 없고, 마르지 않는 석고 조형만 남아 있는 상태로 미완성이었다. 그러니 은 원작이 없는 상태에서 복제품만 여러.. 2016. 4. 28.
더글라스 크림프, 「픽쳐스」, 1979 더글라스 크림프, “픽쳐스”, October, Vol 8. Spring, 1979, pp.75-88. 는 더글라스 크림프가 기획하고, 트로이 브론턱, 잭 골드스타인, 셰리 레빈, 로버트 롱고, 필립 스미스가 참여한, 1977년 가을, 아티스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 ‘픽쳐스’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식별 가능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단어가 가진 모호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일군의 작품들은 특정 매체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진, 영상, 퍼포먼스, 회화, 드로잉, 조각 등을 총 망라한다. ‘픽쳐’라는 단어는 구어체적으로 보통 어떤 이미지를 지칭하지만, 동시에 동사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상상하다, 묘사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 2016. 4. 28.
[후기] DCW 안소현 큐레이터 글쓰기 강의록 2016.3.29. 최정윤 1. 전시의 글쓰기 미술비평문을 살펴보았을 때 빈번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나 단어들이 있다. 쌍을 이루는 단어들을 종종 쓰는데 이는 매우 상투적일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과 같다. 특정 동사들도 반복해서 사용되는데 단어의 명확한 정의와는 거리가 있게 모호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안소현 큐레이터 본인이 직접 작성한 세 편의 글을 제시했다. 하나는 김민애 개인전 을 중심으로 쓴 작품론이자 작가론인 “관성을 흔드는 역설의 공간”이다. 작품의 자세한 묘사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의미 분석으로 들어가는 평문은 일반적으로 잘 읽히지 않으며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 번째 글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단독으로 기획한 전시 의.. 2016. 3. 29.
등재학술지 목록 정연심 교수님이 수업 때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실적 평가 방식이 양적 평가에 치우쳐 있어서 실질적으로 깊이있는 학문 연구가 불가하다고 말씀하신다. 해외 유수의 좋은 저널에 내도 인정이 안된고, 등재학술지 위주로만 평가에 반영이 된다한다. 기획자도 마찬가지로, 인준 기관에서 특정 기간을 근무하지 않으면 학예사 자격증 취득이 어렵다. 프리랜서로 전시기획을 하면 전시를 6개월을 준비했든, 1주일을 준비했든 상관없이 전시한 날짜수 만큼만 경력으로 인정해준다. 질보다는 양으로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평가하는 한..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발전은 없다는 말에 심히 동감한다. 슬픈 일. 게다가 dbpia나 riss, kiss에 올라오는 미술잡지는 미술세계가 유일하다. 월간미술이나 아트인컬처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화를 해서.. 2016. 3. 14.
Jonathan Crary’s 24/7: 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 Matthew Fuller reviews Jonathan Crary’s 24/7: 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 There are many self-help manuals that promise to cure sleep problems through hypnosis, positive thinking, careful routine or a deliberately casual vacancy. There even exist collections of stories claimed to be so soothing and peaceful that they render the reader’s over-busy brain incapable of anything except the .. 2016. 3. 14.
[one work⑯] 국동완 <A Ferry> 2016 국동완 종이에 색연필 195x64cm 2016 국동완의 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6개월 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매일 일기쓰듯이 조금씩 채워나간 이 드로잉은 1mm도 안되는 듯 보이는 얇은 선들로 세밀하게 그려졌다. 그는 작품의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천천히 나아가면서 그날그날 손이 움직이는 대로 배에 이야기를 입혔다. 관객은 오랜 시간 그림 앞에서서 작품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부분은 일본의 우끼요에를 떠오르게 하며, 어떤 부분은 미래주의적 다이내미즘을 연상시킨다. 배는 각기 다른 풍의 문양으로 여러가지 모습을 담은 옷을 입고 있다. 배 중앙에 위치한 창문은 마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영정사진처럼 새겨 넣었으며, 햄버거를 좋아.. 2016. 3. 10.
[one work⑮] 정희민 <dreamland> 2014 정희민 oil, acrylic on canvas 162.2x97cm 2014 정희민은 구글 맵을 통해 지구 저편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하고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공간을 화면 내에서 구현한다. 커서를 옮겨 뷰포인트를 바꾸다보면 어느 순간 연결된 이미지들이 깨지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 파편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포착한 화면은 모니터 위에서 재구성된 가상 현실에 다름 아니다. 화면 중앙에 두 번 반복해서 덧붙인 메모장의 만화 캐릭터와 이 그림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보이는 물결 문양은 관객들 눈 앞에 보이는 화면이 납작한 2차원의 평면임을 확인시켜주듯 삽입되어 있다. 하나의 완전무결해보이는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얼기설기 다시 엉겨붙어 생경한 미래도시 같은 풍경이 된다. * 정희.. 2016. 3. 10.
샤를 보들레르, 「근대 대중과 사진」, 1859 사진이론_2016.3.9 샤를 보들레르, "근대 대중과 사진(1859)", 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 눈빛출판사, 2011, pp. 34-42보들레르가 1859년 살롱 전을 보고난 뒤 쓴 글이다. 출품작 제목이 당대 예술가들의 감수성을 반영하는데, 많은 제목들이 대중을 향해 감각적으로 지어진 것은 그들이 회화 혹은 작품의 내용과 같은 본질로 승부를 보지 않고, 제목으로 거짓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취향은 항상 저급하며 예술가들은 대중 취향에 부합해서는 안 된다. 기술의 발전과 물질문명 속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사진이라는 정확성에 대한 과도한 취향을 경계해야한다. 대중의 놀람을 불러일으키고, 주목을 끌 수 있는 전략을 가진 새로운 공업제품 ‘사진기’의 등장은 대중의 바보스러움.. 2016. 3. 10.
최범, 「디자인 개념의 인식론적 층위들: 추상, 보편, 역사」1999 디자인과 물질문화1_2016.3.10 최범, “디자인 개념의 인식론적 층위들: 추상, 보편, 역사”, 『디자인과 지식』, 월간 디자인네트, 1999, pp.13-27 1. 디자인의 개념‘디자인’은 개념, 행위, 산물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다. 여타 기호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이라는 단어 역시 개념의 차원과 지시대상의 차원을 모두 갖고 있는데, 다른 개념과의 차이점은 디자인이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과 연관된 개념이기 때문에 개념의 차원이 지시대상에 항상 선행한다는 점이다.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복잡다단한 의미망의 안팎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디자인의 개념이 동일한 평면상의 차이뿐 아니라 상이한 인식론적 층위에서의 차이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넓은 디자인의 개념.. 2016. 3. 10.
Rivane Neuenschwander Rivane Neuenschwander’s diverse body of work explores intersections between cultures and the ways that our hopes and dreams take material form. “When I prepare an exhibition,” she explains, “I try to create a sort of ‘world’ for the visitor to reflect upon and interact with.”Aspects of Brazilian culture provide points of departure for Rivane Neuenschwander’s recent work. I Wish Your Wish (first .. 2016. 3. 7.
Kei IMAZU http://www.imazukei.com/ Oil on canvas 227.3x162cm 2014 Oil on canvas 227.3x181cm 2014 Oil on canvas 194x162cm 2015 Oil on canvas 194x162cm 2015 2016. 3. 7.